다크나이트.
더이상의 히어로물은 내 생애 다시 못 볼 것만 같았던 그 영화.
그 후로 3년이 지났다. 그리고 돌아왔다. 기대가 컸다.
놀런 감독의 영화가 주는 기분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압도적이다.
그의 상상력, 또 그 상상력을 구현해내는 놀라운 표현력은 관객을 압도하며 그 압도됨을
나는, 그리고 대부분의 관객들은 즐겼다. 마치 엄청 잘 만든 롤러코스터를 타고 난 기분이었으니까.
그 기분이 그의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이 영화 역시 그런 나의기대를 저버리진 않았다. 관객을 압도하는 스케일과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한스 짐머의 음악 역시 좋았다. 그런데 뭐랄까. 놀런 감독은 늘 자기 영화의 압도적인 외면의 모습과 동시에
그가 하려고 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노력하는데
그 이야기의 무게와 스케일 모두가 무겁고 대단하다 보니 보는 이로 하여금 과잉됨과 피로감을 주는 것 같았다.
그 과잉됨을 덜고자 했던 것인지 전작 다크나이트에 비해 악역의 캐릭터는
후반부에 들어 급격히 그 캐릭터의 강렬함을 잃어 인상적으로 남지 못했고
차라리 뺐는게 나았을지도 모를 반전과 감상적인 색깔은 영화가 보여주려는 표피와 이면 사이에 균형을 맞추기는 커녕 보고 있던 관객의 집중력을 흐트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차라리 전작의 조커처럼
그의 과거를 관객도 배트맨도 누구도 모르는 것으로 묻어버렸으면 나았을것을)
그런 아쉬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분명 수작이다.
내용에 약간 흠이 있긴 하지만 그가 전하려고 하는 이야기는 그의 배트맨 시리즈 중 가장 짙은 여운을 남긴다.
영화 속 배트맨을 곱씹을 수록 '칼의 노래'에서 봤던 이순신을 떠오른다.
더이상 물러설 수도 나아갈 수도 없는 상황, 사지에서
영웅은 추앙받는 동시에 몰아세워지기 마련이다.
더 많은 희생을, 더 값진 희생을 치루어 세상을 구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의 미친 열망 앞에
영웅은 그동안
자기가 이루었던 치적들로부터 사람들로부터 자신으로부터 몰아세워진다.
차라리 죽는게 나을지도 모르는 사지.
죽어야 그가 맞서야할 몰아세움당해야할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기에 죽음이 두렵지 않았던 그였지만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죽음을 이겨내고
자기를 몰아세우는 사지로 다시 살아돌아온 그의 모습은 아이러니컬하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장엄해보이며
지켰지만 등이 휠 것만 같은 책임감과 고뇌를 안겨준 세상으로부터의 해방이자
그가 맞서야했던 악과의 마지막 싸움
그 마지막 모습은
눈물겹게 우아했다.
벌여놓은 스케일이 좀 과잉되긴 했지만 감독은 3부작의 마무리로서 멋지게 영화를 맺은 셈이었다.
감독은 아마 배트맨이 고담시에 자신의 존재가 그러길 바랬던 것처럼, 이 영화가 어떤 '상징'으로 남길 바랬던 것 같고 아마도 상징이 될 것이다. 걸출한 히어로물의 상징. 그저 전형적이었던 히어로의 고뇌에 대한 이야기로의 상징.
또는 대담하고도 압도적인 시청각 영화로서의 상징으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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