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궁녀 - 그럴듯한 이야기

timid 2012. 3. 24. 10:18

 

 

조선왕조 500년, 5개의 궁궐을 거쳐 살아간 왕가에는 27명의 왕이 있었고 그보다 많은 비빈들과, 그보다도 많은 왕족들이 살았다. 그동안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그들의 이야기에 주목했었다. 그렇게 우리는 잊고 있었다. 궁궐에 살았었던 왕족 이외의 수많은 사람들을. 신기할 정도이다. 분명 사람들의 머릿수만 따지면 그들이 다수이고, 그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전해져야할 법도 한데 우리는 그들에 대해서 전혀 아는 게 없으니 말이다.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정도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어떤 이유에서든 기록하려하지 않았거나, 기록했어도 그것을 숨겼거나.

 

이 영화는 그동안 그런 이야기에 대한 상상에서 출발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지금에 비해 이상한점이 너무나 많다. 왕의 일과와 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맡으면서도 그만한 대우를 받기는 커녕 평생 왕 이외의 다른 사람과의 혼인이 금지되어있으며 궐밖출입도 엄하게 금지당했다.  내시는 남성성이 부정될 지언정 꽤 두둑한 재산을 소유하며 왕의 가까이로 갈 수록(대신들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순 없었겠지만) 품계가 올라가고 그에 상응한 대우를 받으며 살았고 혼인하여 양자를 들이고 그 고유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하지만 궁녀는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대부분 부모의 형편이나 욕심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와 본인의 삶에서 누릴-그 시대 여자로서 그나마 누릴 수 있는 혼인해서 남편과 다복한 삶을 살고 아기를 낳아 기를 수 있는- 기쁨과 행복은 모두 포기한 채 다른 사람의 수발을 들며 늙어가야한다니. 왜 옛 사극에서 궁궐에서 암투가 지나칠 정도로 심하게 묘사되었는지는 이렇게 생각해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임금의 승은 이외엔 무엇도 이 폐쇄된 곳에서 그들을 그들로서 존중해주고 그들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는 건 없는 절박한 상황. 서로를 미워하고 견제하지 않으면 억제되어 목끝까지 차오른 욕망을 해소할 수 없는 그들. 가엾지만 이미 역사속으로 사라져버려 이젠 어쩔 수 없는 그들을 영화로나마 감독은 그려보고 기억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