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밥맛이었어! - 퓰리처상 사진전

timid 2010. 8. 19. 17:30

"신문에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지금까지 만들어진 그 어떤 법들과 도덕보다도

더 많은 범죄를 예방한다."(조지프 퓰리처의 말)

 

 

- 과   연       그럴까?

 

 

퓰리처상의 창시자인 조지프 퓰리처는 신문 발행인이 된 후 사회 도처에 있던 비리를 들춰내는데 노력했다지만 오늘날의 세상은 퓰리처가 생각한 것 처럼 순진하지 않다. 오늘날의 범죄자들은 신문에 폭로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신문을 왜곡하고 군중의 눈과 귀를 속일만한 거대한 권력으로 자라났다. 사진이 결정적인 순간을 담아내기엔 더할나위없이 멋진 기록수단이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 순간의 슬픔, 고통, 또는 환희를 느끼기엔 전시회장은 너무 시끌벅적했다.

퓰리처상 수상작들은 대개 사지에서 찍은 것들이었다. 반 인종차별 시위의 현장, 베트남 전쟁의 현장, 한 땅덩어리에 살면서도 서로 다른 피를 가졌다는 이유로 서로에게 총을 들이대는 인종청소의 현장, 기근과 가난이 가득한 아프리카..

 

 

이러한 사지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돕는게 먼저일가? 아님 기록을 남기는 게 먼저일까?

난 전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구경꾼이될지언정 셔터를 눌렀다는 그들이 나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베트남에 갔을 때 생계를 위해 과일을 팔러 나온 아줌마들을 신기한 듯 자기들과 모습때문에 신기함을 느낀건지 과일 한 개를 사주기는 커녕 사진찍기만 바빴던 백인들의 모습이 얼핏 떠오르기도 했다.

무엇을 기록하려했던 걸까? 사진이 아니면 기록할 수 없는걸까? 사진으로 보여주어야만 사람들은 그 사건을 기억할 수 있는것일까? 사진 찍는 사람에게 기록은 어떤 의미였을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현장의 참담함을 알려서, 사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을 구호하려는 메시지를 보내려는 것이었다면,  왜 셔터를 누르기 전에 그 순간에 그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냐는 것이다. 답답했다. 내가 이 위에 사진 속 사람이거나 또는 이 사진을 찍어낸 기자였다면 여자 혼자 감당하기도 벅찬 무장경찰들이 밀려오는 모습을 보고 태연히 셔터를 누를 수 있었을까? 사진속 무장경찰들과 대치[??]중인 중년 여성이 셔터를 누르고 있는 기자를 봤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당시에 셔터를 누르지 않더라도 방법은 많다. 고야의 '1808년 5월 3일'과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그러한 고발로서의 메시지뿐만 아니라 전쟁이라는 인간이 만들어낸 최악의 발명품에 대한 작가의 분노가 어느정도인지 생생하게 드러낸다.

 

또한 나는 사진 너머에 있는 작가들의 시선에 대한 회의감을 새삼 느꼈다. 베트남 전쟁의 참상. 물론 그 전쟁은 베트콩에게도 책임이 있겠지만 굳이 그들을 저지하겠다고 나선 '세계의 경찰' 미국에서 날아온 사람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사진에 드러나는 게 싫었다. 베트남사람들이 서로를 죽고 죽이는 모습을 담았지, 미군이 베트남땅에 저지른 엄청난 일들을 담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이라크 전쟁에 파병나가 전쟁에 의한 피로에 찌들어있는 미군의 모습을 담을지언정 미군의 무차별 공격에 당할수밖에 없었던 그곳의 민간인들을 담지 않은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피사체를 있는 그대로 담아내는 사진의 특성상 왜곡이란 존재하지 않지만 시선에서 느껴지는 진실의 왜곡에 나는 염증을 느꼈다. 솔직하지만 솔직하지 못한 사진 너머의 시선과 그 메시지가 보여서 싫었다. 지금도 현재 진행중인 전쟁, 그 광풍의 소용돌이를 어설프게 바라보는 관객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 돈 내고 들어온 전시회가 아니었지만 나는 사실 엄마가 티켓팅을 할 때부터 그 돈을 환불하고 싶었다. 차라리 그돈으로 구호기금을 보내고 싶었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 이곳에 구경을 나온 사람들이기도 했다. 그들 중 진심으로 사진 속 고통받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려 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끔찍한 현실을 이렇게 사진으로만 보고 도울 수 없음에 눈물을 흘린 사람도 있었을 거다. 그들 중에는 누군가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이 날 바라본 관객들의 풍경에선 그런 모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 곳의 사진들은 감상을 해야할 작품이라기엔 좀 볼품없고, 심각하게 생각하긴 싫은 조잡스러운 구경거리에 지나지 않아보였다. 예쁜 옷을 차려입고 에어컨 바람 잘 나오는 전시회장 한 바퀴를 돌고나서는 신나게 화장을 고치고 전시회장 앞에서 자신들이 여기에 다녀왔노라 사진을 찍어대는 그들을 보니 그들의 허영심이 가여웠다. 그들은 그냥 하루 나들이 행선지로서의 '미술관'에 만족하고있었다. 명칭 또한 얼마나 고상한가. '미술관'. 미술관에 왔다는 그 사실 자체를 누군가에게 자랑하고싶어서 사진을 찍는 그들의 모습은 이 전시회가 사진전이었다는 것과도 묘한 아이러니였다. 그렇게 좋은 '구경거리'는 아니었다. 이 곳의 사람들도 사진들도. 내가 기억해야할 것은 하나였다. 사진 속 사람들은 비록 지금은 전쟁 또는 기근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그렇게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갔던 전쟁과 기근은 지금도 지구의 도처에서 현재진행중이다. 이곳의 사람들이 그사람들의 사진을 마치 동물원 원숭이마냥 구경하는 지금도 전쟁과 기근은, 그걸 만들어낸 무시무시한 자본가라는 인간들은 죄없는 사람들을 집어삼키고 있다. 잊지 않고 그들을 위해 할 수 있는일을 고민하고 실천해야한다. 그것만은 잊지 않으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