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해부학 교실

timid 2007. 7. 13. 10:55

 

 옆에서 소리지르는 다정이랑 같이 봐서 무서움이 배가되었는지는 몰라도 지지부진, 잔인하고 결말이 뻔했던 그동안의 우리나라 공포영화들의 역사로 미루어봤을 때 이 영화는 나름 웰메이드라고 생각한다. 대략 이해가 가는[설득력있는] 사연들로 인한 살인에, 엉성하긴 하지만 여기 저기 단서를 넣어서 영화가 끝나고 관객들에게 [아하!]하고 생각나게 할 스릴러적 요소도 가미했다. 음악도 분위기에 맞게 잘 조성이 되었고, 내가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건 이 영화의 섬뜩한 미장센이다. 경력이 그렇게 길지 않은 감독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등장인물들이 죽어나가는 과정과, 선화[한지민]의 꿈, 그리고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은 내레이션이나 대화로 이루어진 장면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충분히 어필했었다고 본다. 특히 선화의 꿈에서의 시각미는 음산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도 그녀의 무의식을 온전히 반영했던 장면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아쉬운게 있다면 배우들의 연기. 그 역량이 떨어진다기보다도 뭔가, 영화와의 응집력이 찰지지 못한 느낌이었다. 관객들이 몰입하게 하기엔 2% 부족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었다. 그리고 영원한 한국 공포 영화의 숙제이긴 하지만, 대사에도 문제가 있었다. 대사가 [이건 아니다] 싶을 정도로 그 상황에 잘 맞아떨어지지 않았다. 대사 중간중간에 단서를 넣은게 본전도 못찾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김지운 감독의 영화 [장화, 홍련]에서 새엄마 은주와 '장화' 수미의 병치[竝置]장면 "누구야? 누가 이런거야?"[두 사람 다 '홍련'수연이에게 이 말을 했고 마지막에는 은주와 수미가 수미 머리속에서 만들어진 가상의 인물임을 알게 하는 결정적 단서가 된다.]를 염두에 두고 만든 단서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어색함이 없진 않지만 공포 영화를 시도하는 모든 감독들이 그렇듯 여러 가지 넣고싶은 공포영화의 요소들이 너무나 많았을 텐데도 적절하게 소재나 기법들을 골라내어 꽤 잘 만들었다는 것에는 분명히 의의가 있고 박수를 쳐주고 싶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과학실 괴담[과학실에 혼자 실험하고 있던 학생이 있었는데, 문이 잠겨서 괴로워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 뭐 그런거]과 빙의, 복잡한 혈연관계 등 진부한 것들을 끌어다가 새로운 시도를 이루어냈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의 차기 작품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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