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당신의 조선은 어떤 나라입니까? - 대왕 세종.

timid 2008. 4. 21. 17:21

 

 

태종 이방원의 조선은 권위의 나라입니다.

 

 

 그는 조선을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습니다. 호방한 무인의 기질은 아버지의 피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누구도 자기만큼 아버지의 뒤를 이을 사람은 없을 거라 자부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그 마음과는 상관없이 왕의 계승 과정이 시도되었고, 그는 자기 것이라 여겼던 것을 되찾기 위해 두 명의 이복동생을 죽이고, 한 명의 형을 원지로 유배보냈습니다. 건국의 뜻을 함께 했으나 정적이 되어버린 동료들을 무자비하게 쳐냈고 아버지에게는 아들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어렵게 조선의 지존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대한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서라도 조선을 지금보다 더 굳건한 반석위에 올려놓아야 했습니다. 왕권은 말 그대로 지존[至尊]의 자리에 있어야하기에 신하들과의 권력게임에서 늘 우위를 잡아야했고 그들을 이용할 줄 알아야했습니다. 그렇게 20수년간 갈고 닦아오고나니 나라는 백성들이 "이제 내가 사는 나라는 고려가 아니라 조선이노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틀을 갖춘 것 같습니다. 어느새 그는 다음세대를 걱정해야할 시기와 마주합니다. 처음 그는 망설임 없이 첫째 양녕을 왕재라 여겼습니다. 자질이고 뭐고 모든 것을 떠나, 그는 다른 형제들이 갖지 못한 장자로서의 권위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조정에 우환이 생길 때마다 근정전 안에 그가 수많은 피를 흘려 건져올린 왕좌를 오래도록 바라보곤 했습니다. 혼자 만약 태조께서 그때, 첫째 형을 다음 왕으로 지목했다면, 태종은 지금쯤 왕이 아닌 그냥 정안대군 이방원으로서 왕의 충실한 신하가 되어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면, 피의 세월을 거칠 필요 없이 왕실은 정당성을 보다 쉬히 획득하고 빠르게 안정을 찾아 조선이 지금보다 더 나은 나라가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전날, 그는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없어 스스로 모든 것을 뒤엎었던 아들이었기에, 더더욱 원칙적이고 엄한 아버지여야 했습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아들들이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그런 역사가 다시 재현되길 그는 조선사람 그 누구보다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치정기간동안 뿌리내려온 조선은 이제 외세나 역도들에게 쉬히 무너지지 않을 정도로 강하고 깊게 자리잡았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양녕이 무탈하게 그 바톤을 이어받아주기만 하면 이 나라는 앞으로 100년 정도는 강건하게 이어질 것 같고, 그래야 한다고 태종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샌가 그렇게 믿었던 그의 미래는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장자가 아닌 이에게 왕위를 물려줌으로써 조정과 왕실의 피바람이 행여나 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던 그의 눈에도 첫째 아들은 다음 왕으로서 적합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차라리 없었다면, 어떻게든 그녀석을 바로잡아 제대로된 왕으로 올려세운뒤 눈을 감으리라 다짐했건만. 그에게는 양녕과는 너무나 다른, 대서기보다는 신중하게 대안을 찾는, 백성을 사랑하는, 현명한 아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태종이 지켜온 '뿌리깊은 나무'조선과, 지존의 자리에 올려놓은 왕실의 권위는 누구로 인해 꽃피우고 열매를 맺게 될까요. 그는 조심스레 저울질을 하고 있습니다.

 

 

 

 

양녕대군의 조선은 힘의 나라입니다.

 

 

 

그의 가슴엔 언제나 열성조께서 말타고 자유롭게 누비시던 요동이 자리해있습니다. 지금의 조선을 더 크고 강한 나라로 만들어 명나라에 굽신거리지 않아도 되는, 명국과 대등한, 아니 명국보다 더 강성한 나라로 만드는 것이 세자가 된 이후 그의 꿈이자 전부였습니다. 뜻이 맞는 무인들과, 강한 군사, 무기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북방으로 달려나가 옛땅을 되찾고자 하는 열망이 충만한 그를 붙잡는 것은 다름이 아닌 그의 세자자리입니다. 그가 북벌의 꿈을 꾸게 한 것도, 그 꿈을 붙잡게 하는 것도 세자자리라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의 가정사이야기로 넘어가보죠. 그에게도 여느 사람들처럼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습니다. 두분은 거울처럼 닮아있었습니다. 어느날, 아버지가 어머니 아닌 다른 여자를 가까이하면서 두분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그만큼 양녕과 아버지도 멀어졌습니다. 그는 그래서  유년의 많은 시간을 아버지보다는 외숙들과 함께 했습니다. 그들은 양녕에게 아버지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그가 세자가 되고나서는 그가 북벌의 꿈을 품은 발판이자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가 그 꿈을 실현하고자 기지개를 필 때쯤 터졌습니다. 그가 어릴 적 그의 아버지는 칼 잘 쓰고 호탕한 무부였는데, 자라고보니 왕이 되어있었습니다. 외숙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왕에게 머리를 조아리기는 하지만 왕과 함께 권력의 승계를 밟아왔기에 그들의 위세는 하늘을 찌를 듯 높아졌고 그들은 양녕의 북벌의 꿈에, 왕이 되는 꿈에 날개를 달아주는 동시에 세자인 그를 이용하기에 이릅니다. 그의 위세를 등에 업고 부를 탐하고 토지를 불법취탈한것입니다.

 

 

순수하지 못한 날개는 펼쳐지지 않았습니다. 이에 처음 양녕은 이게 다 자신을 주저앉히는 아버지와 그를 탐탁치않게 여기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가, 외숙들이 달아준 날개에 부정부패라는 커다란 납덩이가 달려있기 때문인 걸 알게된 이후 그는 크게 실망하고 맙니다.

 

 나는 그들을 진심으로 믿었는데, 그들은 내가 아닌 내 세자자리를 믿었구나. 그럼 나를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이 믿는 건 정말 나일까? 아니면...

 

북벌을 위해 세자라는 옷을 입고 달려온 지난 날들이 권신들의 뒷배나 불리게 했다는 사실과, 그들이 자신을 이용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북벌을 찬성하고 도왔다는 사실은 그를 충격으로 몰고가지요. 그가 입은 곤룡포를 헐겁게 느끼게 된 것은 그때부터일까요. 만약 그가 그 사실보다 더 많은 것들을 - 북벌을 추진하면서 백성들이 흘려야할 피와 땀들을, 그를 염려하는 신하들의 충언을, 아버지가 그렇게도 많은 희생을 감내하면서 쌓아올린 조선의 기틀을- 볼 수 있었다면 그는 북벌의 꿈을 잃은 대신 현실에 눈을 떴을 겁니다. 하지만 오직 북벌만을 바라보다가 고꾸라진 그의 눈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의 머리속에 밀려오는 것은  정치란 더러운 것이구나. 왜 내뜻대로 아무도 움직이지 않는거지? 왕좌는 내게 맞지 않는 구나, 하는 슬픈 생각들뿐이었죠.

 

여기 비슷한 문제에 부딪혀 힘겨워했던 또 한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꿈 역시 현실에 부딪혀 산산히 부서져 그는 이제 그만 모든 걸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는 양녕과 달리 그의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강한 확신과 희망을 만났기에,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충녕대군입니다.

 

 

 

 

 충녕의 조선은 백성의 나라였습니다.

 

그는 왕자의 자리에 앉아 있을 뿐, 빈손의 아웃사이더였습니다. 아버지는 세자 아닌 다른 왕자들의 재능을 키워주지도, 인정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어머니 역시 그렇게 내쳐지는 아들을 한번도 따스히 안아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의 아버지가 왕이었고, 어머니는 왕비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어렸기 때문에 매정한 부모를 원망한 적도 있었고, 명민했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하려 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의 부모가 궁이 아닌 사저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면 좋았을테지만 그런 소망조차 아무 쓸모가 없다는 걸 그는 잘 알았습니다. 마음고생이 많았고, 부질없는 짓이지만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관심을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한 적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새 스승 이수가 부모님이 채워주지 못한 텅빈 마음을 달래주었고 충녕은 그에게서 배우는 공부가 너무 좋고, 그의 따스한 정이 좋아서 그는 책벌레가 되었고 스승을 아버지처럼 따랐습니다. 날로날로 공부하는 재주가 늘어 어른들도 어려워한다는 대학을 배울 차례가 되자, 스승은 그를 막습니다. 이유를 묻자, 정치를 배우는 책이기 때문에 그렇다합니다. 政者正也. 정치는 바른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왜 바른 것을 배우면 안되는 것입니까? 진짜 정치는 바르지 않다면 진짜 정치가 무엇입니까? 스승은 침묵했고, 그럴 수록 그에게는 많은 의문이 생겼습니다. 충녕은 처음에 정치는 책처럼 명료한 것인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정치에 대한 사소한 의문에 왕자라는 그의 부담스러운 자리가 보태어져 아끼던 수행내관을 잃고 외숙들마저 잃게되면서 그는 정치의 추악한 이면을 보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가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고 세상으로 한걸음 더 나아간건 첫째, 그의 눈앞에 벌어진 정치라는 것의 광경을 고쳐야 한다는 강한 의지를 느꼈고, 둘째, 그 과정에서, 그동안 감옥같던 사저담 밖에 있어 볼 수 없었던, 백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왕위에는 욕심이 없었습니다. 굳이 왕이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고 싶은 희망 한 조각 정도는 품음직했으니까요. 젊은 그는 패기넘쳤고, 정치는 더러워서 가르치지 않겠다던 스승 역시 그의 진심에 감동해 그를 도와주니 그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들떠있었습니다.

 하지만 희망만 가지고 내딛은 현실은 가시밭길처럼 아팠습니다. 왕이 될 수 없는 왕자의 정치 행보는 신하들의 의심을 사기 일쑤였고 그의 존재가 부각될수록 권력을 탐하는 무리가 다가와 그를 부추겼습니다. 처음엔 순수한 의도를 갖고 시작했던 일의 의도가 오인받을수록 그는 자기 자신마저 의심해봐야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잔존한 고려황실세력이 수면위에 올라오면서 문제는 더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가 믿고 스승으로 모시던 내관마저 그 세력의 일부였다는 사실은 실망스럽기보다 상처로 다가왔습니다. 이렇게 심성이 착하고 좋은 사람이 고려를 부흥시키기 위해 싸우다니. 도대체 조선이라는 나라가 그들에게 어떤 나라였길래 이렇게까지 해야했던 것일까. 그 의문에 그의 신념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 이전엔 칼로 그들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말소시키려 했어도 지금부터라도 그들 역시 백성으로서 사랑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면, 조선은 썩 나쁜 나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는 왕자로서의 정체성마저 버리고 그들과 조선을 화해시키기 위해 애쓰지만 사람들은 그가 조선의 왕자답지 못하다며 손가락질하고 원지로 내쫓았습니다. 신념과 원칙에 따랐을 뿐인데, 내가 틀린 것인가. 그는 주춤했습니다.그가 아무리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다지만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념을 택한 건 어려운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그가 택한 길에 강한 믿음이 있었는데, 사람들로부터 그것을 오해당하고 버려진 그 순간 그는 다시금 그의 빈손에 절망하게 된 것입니다.

 

-희망만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내가 틀렸어.

 

그렇게 쫓기듯 도망치듯 나온 경성땅에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가려는 그의 눈에 부서진 희망 한 조각이 눈에 들어옵니다.

 

-나도 당신처럼 모든 걸 포기하려 했을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 당신이 날 구했어요. 천민인데다가 주인에게서 바림받고, 사랑하는 사람과 생이별하고, 반군을 돕다가 그것마저 들켜버린 철저한 패배자였던 나를 구했다구요, 당신이. 그래서 포기하지 않기로 살기로 햇단 말이에요. 그러니까 당신도 포기하지 마요.

 

그 희망의 이름은 '백성'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지금의 충녕의 모습과 너무나 흡사했기에, 백성의 눈에 그의 눈에 빛나는 무언가가 있음에 그는 다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때 일어난 힘으로 내달려 그의 여생을 통해 조선시대 최고의 황금기를 만들었습니다.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 원칙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 바꾸어 더 나아질 수 있을거라는 희망이 그를 세종'대왕'으로 만들었던 것입니다. 픽션이 다소 보태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우리가 [대왕 세종]을 보며 세종대왕을 존경할 수 밖에 없는이유가 여기에 있ㅅ습니다.

 

당신의 조선은 어떤 나라입니까? 아니 시간을 현재로 돌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의 대한민국은 어떤 나라입니까? 내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나라인데 이게 어떻게 나의 대한민국이고 어떤 나라임을 운운할 필요가 있냐구요? 아닙니다. 당신이 오천만 중 하나, 그 작은 존재여도 대한민국은 당신의 나라입니다. 당신이 더 좋은 나라로 바꿀 수도 있고 더 망칠 수도 있지요. 그건 당신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