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극장에서 [괴물]을 봤을 때, 나는 괴물이라는 소재가 갖는 오락성과 비중을 충분히 살리면서 가족의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낸 것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 두번째로 보게 된 [괴물]은 현실과 영화에 공존하는 우리 사회 속 보이지 않는 괴물을 꼬집어냈고, 나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이 영화는 따뜻한 동시에 차갑다. 보통사람들의 소소한 감정과 사건들을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은 따뜻하지만, 그 소소한 일상조차 정치와 권력다툼의 일선상에 놓아버리는 이 세상은 시체보다 차갑다고 단언한다. 대중들에게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를 피하라고 엄포를 놓고, '보균자'라는 딱지가 붙은 자의 말을 듣기는 커녕 그를 현상범으로 내몰아버린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은 매우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린다. '다수를 위한 소수의 희생'쯤으로 명명지어놓고 그것을 당연하다 하겠지. 어쨋든간에 대한민국은 괴물로부터 안전했으니까.
진짜 괴물은 누구인가?
처음부터 괴물은 있었다. 한강에서 괴물이 출현하지 않았을 때에도 괴물은 이미 이 사회에 버젓이 살아있었다. 퀘퀘한 숨을 내뿜으며 살아있었고 약한 자와 현명한 자를 잡아먹으며 살아있었다. 국민의 권리니 건강이니를 핑계삼아 자기 이익을 챙기기 위해 진실을 은폐하고 엉뚱한 패를 내밀어 사람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진실을 알고있고, 그것을 말하려는 사람은 그 사회의 영원한 아웃사이더여야 한다. 괴물은 그들마저도 조종한다. 그들이 사회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선 진실을 보는 눈을 감고 말하려는 입을 틀어막아야 한다. 그저 괴물이 이끄는 대로 요지경이 되버린 세상속에서 그냥 보통사람들 속 보통사람으로 섞여 살아야한다. 있지도 않은 것에 대한 공포를 만들어 국민들이 자기에게 보호받고 있다고, 감사해야한다고 생각하길 강요한다. 강대국을 끌어들여 약한자를 숨통을 틀어쥔다. 그 끔찍한 괴물앞에서 2006년 박강두는 아등바등 현서를 찾아 헤매가며 그와 싸웠고, 1986년 박두만과 서태윤 ['살인의 추억'의 두 형사] 역시 그러했다. 그들은 단순히 보이는 괴물 또는 범인들보다 더 큰 무언가에 맞서고 있었다. 자신들은 몰랐겠지만 관객은 알 수 있었고 감독은 바로 그것을 의도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하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괴물과의 싸움을 봉준호는 너무 진지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너무 얄팍하지 않게 그려냈다. 그가 훌륭한 감독이라 칭찬받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살인의 추억에서 두 형사를 포함한 경찰, 그리고 그 마을 모든 사람들은 범인을 잡고 싶었다. 그는 너무나 교활하고 잔인하게 약한 부녀자들을 강간 살해했고 보통사람의 심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변태적인)살의를 갖고있었고 보통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의감으로 도저히 그를 용서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의 의지와는 상관 없는 것들에 부딪혔고 오래전부터 그들이 봐온 방식으로 범인을 잡으려는 시골 형사 박두만과 서울에서 내려온 이성적인 형사 서태윤, 그 내부에서도 그들은 서로 부딪혀야했다. 수사에 제대로 신경쓸 틈을 주지 않은 채 경찰의 일정은 너무나 빡빡했고, 갖은 수단을 동원하는 데도 그것은 범인을 잡기엔 너무나 어리석고 진부한 방법이었다. 상부에선 아무런 아젠다도 내려오지 않은 상태인데, 언론은 경찰의 무능과 무책임을 탓하는데 열을 올렸다. 참혹한 살인사건 기사에 놀란 대중은 당시 일어났던 학생운동과 그것을 진압하는 과정의 참상들에 대한 관심을 조금 접어두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때 그 사건의 범인은 보이지 않는 '괴물'과 공범이 아니었을까.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우린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그 때 일을 '이미' 끝나버린 일로 기억속에 묻어버렸다. 하지만 감독이 굳이 그 때 그 사건을 공소시효 종료 3년을 앞두고 영화속에 끌어들인 이유는 누구라도 도움을 줬다면 그리고 지금이라도 준다면, 이 사건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했었던 감독의 안타까움 때문이 아니었을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만약 내가 생각한 게 감독의 생각과 얼추 들어맞는다면 [살인의 추억]을 다 보고난 관객들은 이길 수 없고 보이지도 않는 괴물에 대한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사실 내가 그랬으니까. '결국 그냥 이렇게 괴물한테 계속 지면서 살아가야 되는거잖아.' 하지만 감독은 우리가 그것을 다시 '추억'하고 범인을 잡기 위한 할 수 있는 한의 노력을 함으로써 그 매너리즘에서 벗어날 것을 은근히 권하고 있다. [괴물]에서 직접적으로 주인공들이 그 매너리즘 따위는 단번에 날려버릴, 가족의 끈끈한정으로 영화 속 보이는 괴물과 보이지 않는 괴물 모두와의 싸움에서 이긴 모습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다고 낙담할 일은 아니라고 말한다. 강한 악을 이기는 것은 약한 다수가 한마음으로 뭉쳐 이루는 선이다. 그것이 몇 사람이 되었던 상관없다. 현서를 구하기 위해 모인 사람은 별볼일 없는 네 명이었다.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거짓 진실에 너무 귀기울이지는 말자. 그건 어쩌면 괴물이 만들어낸 허상일 것이다. 티비는 이제 그만 꺼버리고. 내 눈으로 내 눈안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보자. 그들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키는 것, 그 사람들과 따뜻한 밥 한 상을 함께 차려먹는 것부터 괴물과의 전쟁의 승산은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괴물의 마지막 장면을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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