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故 김대중 대통령을 생각하면

timid 2009. 8. 24. 00:05

 

그분의 대통령 임기기간에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정치가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었던 나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참 평화롭고도 좋았던 시절처럼 느껴진다.

그 때는 지금처럼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몇만명씩 모여 집회를 열지도 않았었고

게이트는 많이 터졌지만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고개숙여 사과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 어른이 되어버린 나는 현 정국에 대한 강한 불신과 반감을 느끼며 그분의 행동을 주시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대통령들은 퇴임 후엔 두문불출, 그 이후 정국에 대한 정치적 발언을 삼갔고 나는 그게 미덕이기 때문이어서 그런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명박 정부의 개혁[?]을 빙자한 국민 속이기 대작전에 대해 거침없이 지적하고 국민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을 부르짖던 그분의 모습은

내가 봐왔던 어떤 정치인들보다 어질고 존경스러워 보였다. 기실 생각해보면 전직 대통령이란 사람이 이젠 전직이라고 해서

시국에 나몰라라 할 일은 아니다. 그의 행동은 사리에 맞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적극적으로 나서는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일 수록 대통령을 해본 사람이기 때문에 현 대통령이 내놓는 정책이나 추진 방향에 대해

잘잘못을 바로 일깨워주고 옳은 방향을 권유할 정도의 권한과 지헤를 갖고 있음을 나는 그분을 통해서 깨달았다.

故노무현대통령의 서거 때에도 다른 어떤 정치인들보다 슬픔을 표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영결식날 공식 발언까지 제지 당하시고 권양숙 여사 앞에서 애도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시던 그분의 모습에서

나는 그전까지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김대중이라는 정치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그전에는 관심도 없었던 그저 어렴풋이 알고만 있었던 그분의 청년 시절에 대해 알게 된건

그분의 죽음 후, 각종 뉴스에서 그분이 재임하셨던 시절, 그리고 그 이전 그분의 치적에 대해 알리는 보도자료에 의해서였다.

물론 시작은 "민주 투사"하면 생각나는 당차고 비범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어지러운 시대가

그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연단시켰고 그는 고난을 통해 더욱 강해졌다.

비로소 민주 투사로서 모두의 존경을 받게 된 순간에도 몇 번씩 정치 모략에 휘말려 대선에서 번번히 실패하긴 했지만

그의 굴곡진 인생이 그에게 알려준건 칠전팔기였기에 그는 결국 그 실패를 딛고 일어나 당당히 1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역사상 전무후무하게 북한의 정상 김정일과 평양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우리집 어르신들은 할아버지때 북에서 피난온 분들이라 그분의 대북정책이 너무 온건하고 퍼주기식이라며 손가락질 했기에

나도 그저 그러려지 싶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분이 마냥 아무런 계산없이 퍼주기를 했던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각해보면 가난과 세파에 찌든 아이들의 마음을 여는 것도 '햇볕정책'과 유사한 것 같다. 북한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북한을 그 아이들에 빗대어 이야기해보고 싶다.

'그 아이들'은 처음부터 선의를 넙죽 받아들이지 않는다. 

힘든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일 수록 자기만의 날을 서슬 퍼렇게 세워놓고 누가 다가오면

혹시나 자기에게 해를 입히지 않을까 상처를 주지 않을까 그르렁 거린다.

자선과 베풂을 받으면서도 어느 정도 이상 마음을 열지 않고 이것저것 계산해가면서 상대방의 진심을 의심한다.

그 과정에서 포기해버리거나 태도를 바꾸어 "넌 왜 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도 마음을 열지 않니? 이 은혜도 모르는 자식!"하고 몰아세워버리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그 아이의 계산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반응이 돌아온다면 의심은 풀리지 않을 것이고

그동안 베풀었던 사랑이나 물질적인 도움도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그들이 날을 세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의에 대한 그들의 되갚음이 아니라 마음이 열리는 하나의 과정이다.

그 긴긴 과정동안 인내하고 기다려주는 것은 베푸는 사람의 최소한의 예의인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과정이 있음을 예상했고 충분히 기다린 끝에 남북정상회담이라는 쾌거를 이루었다.

그분의 임기 동안 많은 이산가족들이 서로를 만날 수 있었고 남북관계는 영원할 것 처럼 돈독해보였다.

정치와 경제 면에서 내가 그당시의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하지만 국민들의 반발을 샀던 정책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저 대통령이 있는 듯 없는 듯 순조롭게 나라가 돌아갔고 나라 안과 밖이 모두 평화로웠다.

현 정부의 출범 이후 그 분의 재임 기간이 참 좋았던 때임을 실감했다.

참 현명하고 좋은 분 같았는데

조금더 오래 머물면서 국민들에게, 귀를 닫은 이 정부에게 더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바랐었는데

처음 점심을 먹다가 그분의 갑작스러운 서거 소식이 보도되었을 땐 정말 우리나라가 걱정이 되었다.

재임 전이나 중이나 후나 늘 나라걱정을 많이 하셨고 그때마다 사려깊게 발언과 행동을 하시던 분께서 이렇게 가버리시면

도대체 우리나라는 어떻게 하면 좋나 너무 마음이 아프고 속상했다.

그리고 나를 울게 만든 건 세브란스 병원에 들어가신 후 그 분을 간호하는 동안 한번도 병석을 떠난 적 없으시다는 이희호 여사였다.

김대중 대통령 만큼이나 굴곡지고 힘들었을 이희호 여사의 지난 삶과

그래도 꿋꿋하게 그 삶을 버텨낼 수 있도록 서로를 의지하며 온전히 하나로 살았을 노부부의 모습을 생각했고

그 삶 중 반쪽이 떨어져나간 후 남겨진 반쪽의 슬픔과 애통함을 생각하니 눈물이 났다.

빈소에서도 내내 그전보다 수척해진 모습으로 눈물만 떨구고 계신 이희호 여사가 너무나 안쓰럽고

죽은 남편을 위해 3일 내내 눈물만 흘릴만큼 뿌리깊게 내린 그분들의 사랑과 신뢰가 부러웠다.

그리고 그 분들의 자손들을 생각했다. 인상만큼이나 따뜻한 마음을 가진 아버지를, 할아버지를 잃은 가족들의 마음에는

슬픔과 그래도 그분의 고단하면서도 찬란한 삶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깊게 새겨졌을 것이다.

그렇게 지난 화요일

누군가에겐 믿음직스러웠던 남편이, 누군가에겐 존경스러웠던 정치인이,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던 열사가, 세계 평화를 한 걸음 더 성숙시켰던 위대한 사람이 졌다.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장례식 내내 나라는 평화로웠고 그분과는 각별한 인연을 가진 북한의 정상 김정일이 화환을 보내왔고

야당과 여당이 함께 슬퍼했고, 온국민이 진심으로 그분의 죽음을 애도했으며 

그분과는 악연 또는 대립각으로 얼룩졌던 많은 정치인들이 그분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였다.

그분이 돌아가시면서 모두가 원했던 선물을 주고 가신 걸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 평화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하늘에서나마 생전의 현명함과 지혜로 우리 나

 

라를 지켜봐주시고 좋은 인재들을 보내주셔서

나라가 한 걸음 한 걸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발전할 수 있도록

국민 한 명 한 명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고 도와주시길 바란다.

감사했습니다. 존경합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님,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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