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요지경같은 이세상에 대처하는 수퍼히어로의 자세 - 다크나이트

timid 2008. 9. 8. 00:24

 

 

 

인간적인 고뇌, 이것은 언제부턴가  수퍼히어로를 주인공으로 하는 헐리우드 영화의 주된 소재거리로 자리매김했다.

스파이더맨의 삼촌은 마치 그가 스파이더맨이었단 사실을 미리 알았다는 듯이 '큰 힘에는 그만큼의 책임이 따른다.'라고 말했고

그후 스파이더맨은 사회적 영웅이 마땅히 지고가야할 사회적 책임과, 개인적인 삶과 사랑 사이에서 갈등했다. 영웅으로서 남기위해 사랑하는 연인을 외면해야하기도 했으며[스파이더맨1] 개인의 삶을 살고싶어서 영웅의 삶을 포기하려고 한적도 있고,[스파이더맨2]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내면에 꿈틀대는 악과도 맞서 싸워야 했다.

20세기에 도시의 영웅이었던 녹색 돌연변이 헐크는 21세기 들어 이안 감독에 의해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연상시키는, 번뇌로 괴로워하는 하나의 인격체로 재탄생했고, 크리스토퍼 놀란에 의해 부활한 배트맨 역시 사연도 많고 고민도 많은 인간적인 존재로 그려진다.

나는 배트맨 원작 만화를 본적은 없지만, 영화에서의 그에게선 뭔가.. 현실성? 진정성이란게 느껴졌다.

 

어린 시절 우물에 빠지는 일을 겪으면서 박쥐를 처음 접하게 되었고 일종의 트라우마같은 것을 얻게 된다.  부모의 어이없는 죽음이 자기탓이라 생각하면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린 [배트맨 - 더 비기닝]은 영웅의 탄생이 그저 필연이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음을 말하며 수퍼히어로라는 멀게만 느껴졌던 존재에 현실성을 부여했다.

[다크나이트]는 그렇게 태어난 영웅이, 영웅으로 사는 것과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 사이의 괴리를 말하는 영화였다.

고담시의 밤이면 으슥한 곳에서 출몰하는 온갖 범죄의 무리와 고군분투하는 배트맨의 활약상은 어른 아이 할것없이 모두의 선망과 모방의 대상으로 격상되었고 심지어 경찰마저도 그와 공조하여 사건을 해결하기에 이르러 어느정도 안정을 찾는 것 같았던 고담시에 전대미문의 악당 조커가 등장한다. 20세기에 그려졌던 잭 니콜슨에 의해 그려진 조커는 무섭다기보다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광기를 가진 사람이었다. 또한 배트맨의 숙명적인 라이벌이었다. 그는 배트맨의 부모의 죽음과 깊은 연결고리를 가진 자(입이 찢어진 것도 그 때문인것으로 기억한다.)였기에 배트맨은 그를 죽여야할 마땅한 이유가 있엇다.

 

 하지만 히스레저에 의해 다시 태어난 조커는 horror, 그자체였다. 그의 모든것은 불분명했다. 그의 얼굴은 시종일관 삐에로 페이스페인팅이 되어있고, 그의 이름 나이 지문조차도 고담시의 기록에는 남아있지 않은 미스테리한 사람이다. 찢어진 입에 대한 이유조차 불분명하다. 다만 분명한 것 한가지가 있다면 그에게는 끔찍하고 슬픈 과거가 있었고 그 과거가 현재의 그를 완성했단 것이다.

 정확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과거에 사람들로부터 얻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 인간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생겼고, 그로 인해 조커는 목적 대상은 분명하지 않지만 세상 전체를 향한 가장 뜨거운 분노와 광기, 그리고 가장 차가운 냉소를 지니게 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그는 이전의 헐리우드의 다른 악당들과는 확실한 차별화를 이룬다. 그는 혼자 행동하되 혼자 행동하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와 공동 목표나 계획을 짜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사람들의 양심에 물을 먹이고 그들을 의도조차 알수없는 음모에 합류시킨다.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자기 복수를 위해 사람을 이용하는 모습은 작년 [마왕]에서의 오승하와 닮아있기도 하다. 그와 오승하의 차이는 분명한 복수의 대상이 있고없고의 차이였다. 오승하의 목표는 분명했고 그 이유 역시 너무나 슬펐기에 그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우면서도 슬픈 복수의 화신이 될 수 있었지만, 조커는 달랐다. 그가 쏘는 총알의 과녁은 없었다. 그가 목표하는 바는 지금보다 더 큰 혼란과 광기, 그것 뿐이었다. 목표가 모호한 그의 악행은 도시 전체를 광란의 도가니로 몰아갔고 사연 없이 벌어지는 그의 활극은 그에게 어떤 연민조차도 허용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는 정말 죽어야 마땅한 악당, 아니 어쩌면 악마의 화신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배트맨은 그를 죽이지 못했다, 아니 않았다고 해야 말이 맞는 것인가.

 

 

 

 

 

 배트맨과 조커, 둘의 관계 또한 매우 아이러니컬하다. 도시의 선을 지키는 배트맨과 악을 지배하는 조커. 둘은 마치 동전의 양면같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언젠가 조커가 배트맨에게 했던 말처럼, 그 둘은 사람들에게 그저 '별종'일 뿐이었다.  어떻게 활동하느냐에 따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졌을 뿐, 그들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을 내려놓았을 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사람들의 차가운 질시 뿐이라는 걸 두 사람은 모두 알고있었다. 배트맨은 조커같은 악당을 처단함으로 인해 존재의 명분을 얻었고, 조커 역시 배트맨을 죽이기 위해 폭력배들에게 고용되었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으면 서로는 존재의 위협을 받게되어 있었고, 그건 그들의 숙명이었다. 배트맨은 그 숙명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다. 조커를 죽이고 영웅으로 남고 싶었다. 영웅으로 살아왔기에 영웅으로 기억되는 건 보상 까지는 아니어도 최소한 사람들이 그의 행적을 예후해주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조커는 그 발상을 통째로 뒤집어놓았다. 그는 배트맨이 가면을 벗을 때까지 살인을 계속하겠다고 선포함으로서 예고살인을 계속해나갔고 그때마다 그들을 어떻게든 살려보기 위해 배트맨이 손을 써봐야 소용이 없었다. 배트맨은 당황했고 그 때부터 그동안은 고민해본 적 없었던 존 웨인이 아닌 배트맨으로서의 삶에 의구심을 던진다.

 사회적인 영웅으로 계속 활동하면서 , 조커를 잡을 때까지, 그 끝까지 싸운다면 그 언젠가는 조커를 잡을 수 있겠지만 그 언젠가로 가는 시간동안 계속 무고한 사람이 죽어나갈 것이고 배트맨이란 존재는 조커를 잡든 그렇지 못하든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이 너무나 분명했다. 그때엔 정말 배트맨으로서의 삶을 포기한다해도 모든 사람들에게 용서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배트맨의 가면을 벗게 된다고해서 조커의 악행이 끝날지는 미지수였다. 오히려 그의 신분이 노출된다면 그렇게 해서 배트맨으로서의 인생이 끝난다면 그에게 당했던 폭력배들에 의해 어느날엔가 초라하게 죽음을 맞이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그는 알고있었다. 두 갈래 길 모두 막혀있는 상황에서 그는 오래도록 고민했다.

 

 

 

 

 

 

 

그리고 그 끝에서 그는 방법을 찾았다.

두 갈래 길 어느것에서도 영웅이 될 수 없다면

온갖 악의 구정물과 누명을 뒤집어쓰고 영웅이 아닌 묵묵한 수호자의 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는 요지경같은 세상,

요지경같은 세상이라도 지켜내야한다면, 적어도 그것을 숙명으로 믿고있는 그라면

최악으로 변해버린 그 모든 상황의 책임을 다 자기의 책임으로 돌림으로서 스스로를 파괴하고

새로운 영웅이 나타나길 묵묵히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게, 그가 내린결론이었다.

그의 선택은 아무죄 없지만 만인의 죄를 위해 인류의 구원을 우해 십자가의 길을 선택한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영화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고담시처럼 아우토반이 되어버린 이 세상에서 범죄없이 평화로운 유토피아를 꿈꾸는, 평범한 한 남자의 대처자세를 조명했을 뿐이다. 그는 절대선을 추구했던 스스로를 파괴함과 동시에 절대선의 대표자였던 한사람의 악행을 은폐했고 사회는 안정을 찾았다. 그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여기에서 진실은 과연 선한 것일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진실에는 선과 악, 어떤 색깔도 없다. 그저 진실 그 자체일 뿐. 다만 그 진실을 은폐함으로서 선을 추구하려는 한 사람의 눈물겨운 노력이 희망으로 가는 헛되지 않은 선택이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