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하 지금 나랑 장난해염?
포스터를 누가 만들었는 지 모르겠지만, 단언컨대 그는 이 영화를 보지도 않았다. 봤어도 영화를 제대로 이해를 못했던 것 같다. '사랑을 꿈꾸는 뉴요커들의 로맨틱한 판타지'와 포스터 속 기네스 펠트로와 페넬로페 크루즈는 눈부시게 아름답다.[게다가 난쟁이 똥자루만한, 하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남자 주인공 마틴 프리먼의 얼굴은 흐릿하게 처리를 해놓았다! 이런 외모 지상주의적인 포스터가 또 있을까?] 그 문구와 이 여배우들과의 조합은 짐짓 이 영화를 로맨틱 코미디 쯤으로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웃기는 소리. 이 영화를 더 잘 설명해주는 포스터를 꼽으라면 하단의 영어 포스터가 더 맞다. "dreaming is believing." 이 영화와 한핏줄인 영화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수면의 과학'을 꼽을 것이다. 물론 [수면의 과학]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수면의 과학]은 스테판의 꿈과 현실을 오가며 꿈속에서의 동화같은 사랑을 그렸다면, [굿나잇]은 그 영화보다 현실에 조금더 나아갔고 꿈은 좀 더 어른의 것을 닮아있다.
꿈은 자기가 무의식적으로 원하던 것들의 발현이라고 누군가가 얘기했단다. 음악적 재능은 있지만 그로 인한 인정과 명성은 친구에게 다 넘어가버리고 대중의 기호에 맞춰 노래를 만들어야하는, 그리고 집에서는 아내와의 권태로운 생활에 이골이 나버린 개리에게 꿈은 정말로 그랬다. 그에게 꿈은 믿음[dreaming is believing]이었고 현실로부터의 도피였다. 그래서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을 뿐더러 꿈을 자기 맘대로 더 조절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런 경험은 누구나 해봤을 거라 생각된다. 현실이 너무 버거워서 또는 꿈이 너무 황홀해서 이 꿈에서 다시 깨어나지 않았으면, 이렇게 쭉 내마음대로 꿈이 이어졌으면 하고 바라는 거. 하지만 어떻게든 언제든 간에 꿈은 현실과 부딪혀 깨어지기 마련이고 우린 현실을 살아나가야 한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에는 티켓값이 아까워서 허허허 웃다가 집에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꿈과 현실, 이 두가지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가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어서 현대인의 낮과 밤을 조종한다. 현실로부터 도피하고 싶은 혹은 기억하고 싶은, 실현되었음직한 일들이 꿈으로 나타나고 그 꿈이 각인되고 나면 사람은 그 꿈을 이루려고 또는 잊으려고 애를 쓰며 현실로 나아간다. 그렇기에 꿈은 필요하다. 숙면이 아무리 좋다지만 우린 때때로 옅은 잠을 자면서 꿈을 꿀 필요가 있다. 그것이 희망이라면 현실을 더 열심히 살아가게 할 원동력이 될 것이고 망상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을 떨치고 나와 현실을 보다 더 가치있는 것으로 보게 만들어 줄 테니까 말이다.
개리에게 꿈은 그 두가지 전부였다. 꿈에 그리던 여인을 만나기 위해 노력했던 시간들 동안 그에게 꿈은 희망이었고, 그런 노력 끝에 만난 그녀가 자기와, 정확히 말하자면 자기의 꿈속에 있었던 그녀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때 그의 꿈은 망상으로 연기처럼 흩어져버렸다. [여기에서 우린 이 영화가 '수면의 과학'과 분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음을 발견한다. 수면의 과학에서 꿈과 현실의 충돌은 제법 귀엽고 낭만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개리는 너무나 괴로워하고 그것을 담는 카메라의 눈길은 제법 진지하고 현실적이다. 그리고, 그 고통 끝에 그는 현실적인 결정을 내리게 된다. 스테판이 꿈 속에서와 동일한 여인 스테파니를 선택하게 되는 것과는 다르다.] 그 뿌연 연기를 헤치고 나와보니 자기 앞엔 그렇게도 권태롭고 그렇게도 지겹게 싸워온 아내 도라가 서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금 꿈 속 여인과 현실 속 아내 사이에서 갈등하지만 이번엔 현실을 택한다. 다음엔 누구를 택하게 될 진 아무도 모른다. 그렇게 꿈과 현실이라는 두가지 바퀴를 힘겹게 굴려가며 개리는, 또 우리는 살아갈 것이다. 꿈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오늘도 꿈을 꾸기 위해, 현실을 살아가기위해 당신과도 이제 그만. 굿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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