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식객

timid 2007. 11. 14. 20:59

 

상훈오빠 밥만 사주고 돌아가기엔 나온 수고가 아까워서 어디로 갈까, 내가 찾아간 곳은 영화관. 사실은 오다기리죠의 '도쿄타워'를 볼 생각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그 영화는 흥행하지 못하면 상영을 포기해야하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생존원리에 따라 자취를 감춰버렸다. 그럼 뭘보지,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없는데 하면서 고민고민 고른 것이 바로 이 영화였다. 평점도 좋고, 보고온 사람들도 평이 좋길래 후회하진 않겠지 싶었다.

 

그런데 이게 왠걸, 그래 사실 볼거리가 풍성하고 중간중간 터지는 웃음으로 눈과 귀가 즐거운 것은 사실이었으나 영화가 끝나고 나서 내게 남은 거라고는 이 영화에 대한 불평거리뿐이었다. 허영만은 뛰어난 만화가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나는 그의 만화를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타짜'라는 대단한 영화를 통해서 그의 만화가 얼마나 치밀하고 흥미진진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같은 원작자의 작품이 어떻게 다루어지느냐에 따라 '타짜'가 될 수도 있고 '식객'이 될 수도 있는지 깨닫게 해주었다. 아마도 내가 [식객]을 지루하고 진부하게 느꼈던 것은 '요리왕 비룡'이나 '미스터 초밥왕'이 영화화될 수 없는 이유와 일맥상통할 것이다. 요리를 소재로 한 연속물들이 즐겨 쓰는 내용의 큰 줄기라는 것은 천재 요리사가 최고로 인정받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몇십 권씩 나와도 질리지 않는 것은 그 와중에 겪는 우여곡절과 맛의 향연에 독자들은 끊임없는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그러한 즐거움 덕택에 요리 소재 연속물은 연재가 이어지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뻔한 [권선징악 천재승리로 결부되는]스토리를 포장해내는 시각적 즐거움에 독자는 진부함이란 것은 눈감아 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이 두시간 정도로 압축되어 나온다면, 당신은 어떻겠는가? 영화는 뻔한 스토리를 애써 풀어내느라 두 시간을 꾸역꾸역 채워가고 있었고 그 와중에 '요리'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의 자리는 참 작았다. 원작의 흥미진진함은 두 시간동안 증발해버리고 진부함만 남았다. '마음을 움직이는 맛!' 참 멋진 말이다. 나 역시 마음을 움직이는 선생님, 감동이 있는 선생님이 되는 게 꿈이었기에 그 말이 참 많이 와닿았다. 하지만 이 영화는 최고의 맛이 마음을 움직이는 맛이라는 건 알면서 정작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가 무엇인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중간중간 얼기설지 화려한 음식으로 가려놓으면 까꿍, 하고 속아넘어갈줄 알았나본데, [원래 그냥 그렇게 넘어가야하는 건가?] 나는 어림없었다. 칭찬해주고싶은건, 캐스팅이었다. 김강우, 임원희, 이하나. 캐릭터 하나 하나가 살아있었고 분명한 색깔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한가지 걸리는 건, 봉주의 아버지로 나오셨던 김진태님이었다. 용서할 수 없을만치 적은 분량으로 영화속에 출연하셨는데- 그래놓고 포스터에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은 기획사의 낚시질은 내가 두고두고 용서하지 않을것이다[!!] 내가 감독이었다면, 혹은 시나리오 작가였다면 성찬과 봉주의 앙숙관계를 맺고 풀어내는데 봉주의 아버지를 깊이 있게 개입시켰을 것이다. 그랬다면 스토리가 좀 더 부드럽게 진행되지 않았을까, 오만한 생각을 해보았다.


 

 


캐스팅 이야기가 나온 김에 몇 자 더 적자면.

 예-전에 나 고등학교 때 쯤 김강우라는 배우를 드라마에서 처음 접했을 때, 그가 주는 느낌은 어정쩡했다. 권상우와 비슷해보이면서도 그렇게 잘 생기지도 않았고. 드라마 배역에 제대로 녹아나는것 같지도 않고. 한마디로 외모도 그럭저럭 연기도 그럭저럭 그냥 봐줄만 하네, 주의깊게 보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는지, 그를 다시 본건 [태풍태양]에서였다. 이제 김강우라는 사람의 분위기, 느낌은 어느정도 내 머리속에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그게 김강우라는 배우에 익숙해져서인지 김강우가 배우로서 많은 성장을 해서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어느새 내 머리 속에 김강우의 이미지는 참 선하고 건강한 눈빛을 가진 배우라는 것. 이번 영화에서도 그 눈빛이 참 좋았다.

 

 

내 머리 속 임원희를 가장 깊게 각인시킨 작품은 윤종신의 뮤직비디오 [해변 부르스]였다. [다찌마와 리]에서도 [해변 부르스]에서도 그는 명랑만화에서 불쑥 튀어나온 것도 같고 진지한 척 주책맞았다. [쓰리, 몬스터] 중 박찬욱 감독이 만든 그 끔찍한 작품[cut]에서도 그는 인질범역을 그만의 아우라로 새롭게 포장했고, 그가 그려낸 인질범은 [아마도 감독이 주문한 것 이상으로] 끔찍하고 무서웠다. 그의 주책맞고 수다스러운 잔인함은 다른 영화 속 무거운 인질범들의 이미지보다 더더욱 소름이 돋았다. 웃는 얼굴로 구수한 사투리로 걸지게 이야기를 하다가 싸느을하게 정색을하고 손가락을 자를 때. 난 정말 식겁해마지않았었다. [식객]에서도 임원희는 역시, 물론 [cut]에 비하면 귀엽기까지하지만 어쨋든 악역을 맡았다. 승리를 위해선 어떤 수단이라도 가리지 않는 봉주가 '임원희화'되었다. 그래서 그는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봉주가 되었다.


 

이 배우의 매력을 글로 쓰기엔 이젠 귀찮다. [연애시대]에서 손예진의 동생으로 나왔을 때, 이 사람 정말 신인맞나 싶을 정도로 능청맞고 사랑스러운 연기를 보여줬고 그랬기에 [연애시대] 이후 여러 드라마 영화에서 주연자리를 꿰찬 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있다면, 지금까지의 이미지가 다 비슷비슷하다는 점. 데뷔한지 긴 시간이 지난게 아니니, 앞으로 그녀에게서 발산될 여러 가지 색깔의 매력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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