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스캔들 - 조선남녀상열지사

timid 2007. 1. 7. 21:54

 

난 영화를 보면서 유난히 잘 운다.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그렇게 잘우는지. 생각을 여러가지 해봤는데 영화 속 주인공들의 감정에 너무 이입되나 보다. 그 감정이 자꾸 공감이 되서, 너무 애가 타서 눈물이 나는 거 같다. 영화의 매력은 그런 것 같다. common sense, 인간이 느끼는 보편적 감정에 대하여 얼마나 섬세하면서도 친근하게 다가올 수 있는지. 천만 관객이 봤다는 [태극기 휘날리며][왕의 남자][괴물]같은 영화들이 그랬듯이. [태극기]와 [괴물]은 우리가 그동안 늘 곁에 있었지만 소중함을 몰랐던 가족의 사랑을 환기시킴으로서 관객들에게 감정적으로 어필했고, 내가 [왕의 남자]에 감탄하는 것은 동성애라는 다소 생소한 문화코드로 애증이라는 복잡하고도 흔한 감정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그려냈다는 것이다.

 너무 서설이 길었네, 어쨋든 [스캔들]은 그런면에서 사랑의 여러가지 모습들을 다양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에서부터 닳고 닳아 자기감정까지도 깨닫지못하고 자꾸만 엇나가는 아픈 사랑까지. 내가 KBS에서 하는 영화를 특히 좋아하는 이유는 야하고 혐오스러운 장면을 다 편집해줘서인데, 스캔들 역시 굳이 다 보여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을 편집해줘서 참 고마웠다.

주인공들은 나중에 결국 모두 불행해진다. 난 영화를 보면서 저 사람들이 왜 저렇게 아파야하나, 왜 저렇게 슬프게 끝나야하나 계속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그러다가 불쑥 입으로 터져나온 한마디는 '마음이 죄네,'였다.

 

숨긴다고 없어지는 건 없다. 그냥 그건 숨겨진 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이다. 오래 숨기면 숨길 수록 곪아터지고 그 주변까지 문드러지게 만든다. 하물며 사랑이라고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화려하게 꾸미고 숨기고 쉬쉬하고 아닌 척 한다고 사랑이 쿨해지는 것은 아니다. '나는 가오' 한 마디로 휑하니 가버리는 조원을 그놈의 자존심이 무언지 그대로 말 한마디 못해보고 떠나보낸 조씨부인이 얻은 건 결국 아무도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았던 끔찍한 결말이었다. 그녀는 쿨한 사랑을 한 게 아니다. 그 사랑은 거짓말이다. 거짓엔 감동이 없고 감동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그냥 이름조차 붙이기 민망한 감정 덩어리일 뿐이다.

 

영화를 보고있자니 그모든 사건의 처음과 끝엔 조씨부인이 서있었다. 처음에는 이야기를 '갈때까지 끌고간' 조씨부인이 얄밉기도 하고 자기가 벌려놓은 일을 다 그대로 꾸역꾸역 돌려받는 그녀의 모습이 고소하게까지 느껴졌었지만 본질은 그 사건을 '누가' 처음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왜'시작했느냐인거였다.

 

조씨부인은 겉으로는 정숙한 척 품위있는 척하면서 왜 그런 망측한 음모를 꾸몄을까?

왜 조원은 희대의 파락호였을까?

 

어린 나이에 다른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으면서도 얼굴 조차 모르는 다른 이를 사랑해야하는 조씨 부인, 그녀는 악녀라고 보기엔 너무 비련의 운명을 타고났다. 그녀를 엄한 규방의 정숙한 부인으로 키워낸 건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솔직하지 못한 사회, 서로 다 '그렇고 그런걸'알면서도 아닌 척 모르는 척 숨기려고만 했던 당시 사회아니었나. 오히려 자기 감정에 솔직하고 결국 자기 마음 가는대로 행동했던 조원과 숙부인은 손가락질이 아니라 박수를 받아야할 시대의 선구자로 보인다.

그시대에 비하면 우린 참 좋은 시대에 살고있다. 아무도 내가 동성이나, 나이차가 많이 나는 사람 혹은 외국인을 좋아한다고해서 손가락질 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 이런 좋은 시대에 살고있으면서도 우리는 참 사랑이라는 감정에 솔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누가 숨기라고 숨겨야한다고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숨기고 없는 척 아닌척 생색내는 건 예사이다. 자기 마음을 따라가는 것, 그게 얼마나 멋지고 간단한 일인 걸 모르고. 또 알면서도 제대로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내가 참 부끄럽다.

 


개인적으로 숙부인의 마지막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살얼음판이 된 강가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때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그 안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단장[斷腸]의 그리움이 절절하게 묻어났다. 그녀가 가고난 자리에 덩그러니 남은 빨간 목도리[사진 속]는 내가 봐온 어떤 영화들 속 소품보다도 아름답고 슬프게 머리 속에 남았다. 원색, 그것도 빨간색은 과부에겐 금단의 색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조원을 사랑하면서부터, 조원이 마음속에 깊이 자리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한 후부터는 태연히 빨간 목도리를 할 수 있었다. 반가의 사람이라는 체면을 벗어던질 수 있게한 사랑이라는 이름의 용기. 영화에서 다른 어떤 여인들의 화려한 꾸밈새보다도 아름다웠다.

 

요즘 새삼 전도연이라는 배우가 다시 보인다. 정말 멋진 배우인것같다. 어쩜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여러가지 배역을 소화해내는지, 그녀의 필모그래피를 보고있으면 그녀가 얼마나 여러가지 색깔을 갖고있는 배우인지 알게된다. 알면 알수록 멋진 배우다. 몇년 전까지만해도 소문으로 접해오던 그녀의 문란한 사생활에 치를 떨던 나였지만, 이젠 배우에게 뭐 그런게 중요한가 싶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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