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람객들도 영화 평론가들도 모두 이 영화를 침이 마르게 칭찬했다.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고,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은 조목조목 다 맞다. 스타일리쉬 느와르.영화 중 자주 등장한 강한 원색적이고 화려한 스카이라운지와 그 외의 투박하고 건조한 세트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주제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실마리를 열어주고 있었다. 쟁쟁한 배우들의 카리스마는 장면 여기저기에서 산발적으로 뿜어져나왔고 그것은 그 장면에 가장 적절한 것이어서 자연스러우면서도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주연 이병헌은 맨주먹에서 연발총까지에 이르는 다양한 액션을 대역을 고사하며 훌륭하게 소화했을 뿐만 아니라, 관객마저도 알 수 없는 묘한 속내를 가진- 순수일수도 광기일수도 있는 선우의 캐릭터를 눈빛 안에 담아냈다. 그의 연기인생의 쾌거일거다. 영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 난 또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그래, 잘 만들었다. [장화, 홍련]에서 공포 영화의 새 지평을 열었던 김지운 감독다웠다.
달콤해서 가벼운 것인지 가벼워서 달콤한 것인지 알 수 없는 목숨의 무의미함.
달콤해서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인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에 달콤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선우의 꿈.
아, 세상은 요지경- 요지경 속이다.
감독이 영화를 스피커삼아 관객들에게 하고싶었던 말이 무엇인지 난 아직도 종잡을 수 없다. 멍청한 관객이라서 그런가 보다. 멍청해서 그런건지 '이렇게' 잘만든 영화에 난 좋은 평점을 줄 생각이 없었다. 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것이니 뭐 태클을 걸어도 나로썬 할 말이 없다. 난 그냥 개별적인 관객으로서 개별적인 생각을 하고 있는 것 뿐이니까.
객담을 좀 하겠다. 사실 난 슬러셔 무비는 정말로 질색이다. 잔인해서이기보다도, 목숨을 그렇게 함부로 생각하는 영화를 난 도무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슬러셔 무비들은 죽고 죽이는 이유가 단순하다. -스크림에서의 살인마는 심지어 '재미로'라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관객들을 아연케 한 바 있다. 그런 점에서 처음 이 영화도 그런 영화들과 공통되어 보였다. 백사장[황정민]은 선우[이병헌]가 단 한번 제 앞에서 자기를 모욕했다는 이유만으로 잔인하게 그를 밟았고, 강사장[김영철]은 선우가 희수의 외도 사실을 묵인했던 '최선의 선택'을 오해한건지 -그것조차 명확하지 않다. 후반부에 선우와 강사장의 독대 장면이 있었지만 둘은 그 점에 대해 명확한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를 죽이려 들었다. 선우는 그런 강사장에게 씻을 수없는 배신감을 느끼고 극단의 길을 선택한다. 끝이 뻔하지만,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길. 어찌 보면 감독의 전작 [장화, 홍련]에서의 수미의 선택과도 맥을 같이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돌이킬 순 없잖아.]
그런데 뒤집어 생각해보면, 인생 안에서 느끼는 달콤함이라는 것은 그런 어처구니 없는 선택때문이 아닌가. 선우는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결국 모든 것을 파멸시키는 순간 속에서도, 꿈을 꾸고 있었는지 모른다. 이 모든 일이 끝나고나면 희수가 연주하는 첼로 소리에 아득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다시 내게 오리라. 그 꿈을 꾸다가 결국 죽더라도 아니, 꿈을 꾸다가 죽게되는 것. 그것이 바로 낭만의 덧없는 달콤함이 아닐런지. ㅡ주인공 이외의 모든 인물들이 죽는, 그들은 그저 주연이 아니기 때문에서 주인공이 쏘는 한방의 총알에 죽어야만하는 사소하고 개별적인 죽음들에 내가 화를내고 심지어 이 영화가 혐오스러워질때, 들었던 생각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킬빌]을 생각했었다. 브라이드가 조직에 대한 복수를 했듯이 선우도 그랬으니까. 그런데 그 생각은 틀렸던 것 같다. 브라이드가 조직일원을 죽이는 건 복수, 단순히 그것뿐이었다. 타란티노는 그것에만 목매달았고 애석하지만 복수의 본질은 지극히 얕은 것이었다. 난 이 영화의 중간중간 그 의미없는 잔인함 때문에 여러번 채널을 돌려야만 했다. 얄팍한 것에만 치중하지 않으려했던 김지운 감독의 세심함이 고맙다. 감독의 세심한 배려가 관객들에게 그만큼 깊은 생각의 스펙트럼을 선사했던 것 같다.
덧붙여 적자면,
내가 처음 이 영화에 줄 평점이 적었다고 했던 것은 그 스펙트럼의 처음이 잔인함에 귀결되는 목숨의 사소함쪽으로 초점이 맞춰져있었기 때문이다. 후반부로 가면서 영화는 맨주먹과 외마디 비명대신, 총알과 총탄소리로 죽음을 대신했다. 마치 세스코가 해충박멸하듯 선우의 총알은 화면을 뚫고나갈듯이 강하고 묵묵하게 사람들의 머리 혹은 심장에 구멍을 냈다. 비명소리도 내지 못할 만큼 목숨을 잃는 것은 단순하고 예고가 없었다. 그렇게 쉬운 사람 목숨인데, 영화 막바지에 이르기까지 여기저기 총을 맞고도 죽지 않는 선우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쟤는 왜 안죽어'라고 말해버렸다.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영화 안 사람들에 진저리치면서도 결국 나마저도 영화 안에 있는 것처럼 목숨이 하찮아진거다. 난 느와르라는 장르안에 숨어 한 사람이 벌인 대량학살참극에 난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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