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소중한 타잔.

timid 2006. 3. 29. 15:00

난 게임을 잘하는건 아니지만 한번 정붙인 게임은 질려도 질려도 계속 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어서 이 게임을 버리질 못하고 줄기차게 즐겨왔다. 어드벤쳐 게임 타잔.
옛날엔 뭣도 모르고 타잔게임이 즐거웠다. 길을 막는 원숭이를 야자수로 때려죽이고, 내가 칼을 들이미는 밀렵꾼들에게 돌칼을 들이밀고 그렇게 어드벤쳐의 세계를 여는 것에 그 때는 즐거움만 있었다.
근데 어느날 머리통이 이만큼 커져버린 나는 [타잔]이라는 만화 자체에 참 깊은 연민을 갖게 되어 버렸다. 타잔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이기로 자기와 함께 밀림에 사는 원숭이와 오소리 따위를 야자수로 때려서 비켜세워야 하고, 보드를 타듯 나무를 타기 위해 나무를 민둥나무로 만들어버릴 수 있단 말인가. 여기서도 여실하게 드러나는 서양식 정복주의적 자연관이 여실히 드러난다.

나중에 타잔의 연인 제인의 도움으로 타잔은 인간 세계와 접촉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숲을 파괴하려는 밀렵꾼들과 싸워 이긴다. 그러고나서 인간 세계로 돌아갔는지, 다시 밀림에 남게되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여튼간에 인간이 얼마나 대단하기로 자연을 제멋대로 지배하고 지켜낼 수 있는 존재인지 게임을 하다가도 가끔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자연은 인간의 부속물이 아니다, 인간이 자연의 부속물이다. 성경을 누가 그렇게 해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연을 지배하고 번성하라는 그 구절은 아무래도 잘못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그런 뜻에서 하신 말씀이 아니실텐데, 철학자들이 혹은 정복자들이 자기들 마음대로, 그들의 이익대로 해석해댄 통에 오늘날 아이들이 보는 이런 만화와 어드벤쳐 게임에서도 정복주의와 환원주의가 만연하다. 배운건 이런 것 밖에 없기로, 보이는 것 역시 그런 것만 보이기 시작했다. 바보같은 소리이긴하지만 갑자기 이런 말이 하고 싶어서 길게 글을 쓰게 되었다.
타잔같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존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람이라는 것은 영악하긴 하지만 나약해서, 자연의 도움 없이는 살 수없다. 만화 타잔에선 타잔이 밀렵꾼들로부터 열대 우림을 지켜냈지만, 그것은 그가 살아온 날동안 받아온 자연의 은혜에 값하는 약소한 선물에 불과할 뿐이었다. 다시 말해, 타잔은 우리가 자연에 의지하여 살 수 밖에 없다는 소중한 반증인인 것이다. 그런 사람이 아직 세상에 많이 살아있어서, 무조건 개발만을 부르짖는 이기심을 조용히, 조용히 힐책할 것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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