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무협영화는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다른 세상사람들 이야긴 것 같은데다가 가족 드라마든 로맨스든 무협이랑 버무려놓으면 무슨 흥춘이한테 스키니진입혀놓은것처럼 민망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어릴 때는 뭣도 모르고 [동방불패][황비홍]같은거 하고 신기하고 재미나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잘 봤는데 이정도면 나름 머리통이 커졌다고 봐야하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런 내게 [영웅]은 특별한 감동을 주었다. 장예모 감독이 2000년에 들어와 다소 상업적이고 동양에 대한 신비주의를 심어주는 무협영화를 만드는게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영웅]은 정말 거대한 괜찮은 영화였다. 풍부한 색감과 중국영화 특유의 아우라, 뭔가 뻥이 심하다 싶을정도로 과장되어있긴하지만 그 안에서는 장엄함같은게 느껴진다고 해야하나. 우리 한국화가 갖고 있는 소탈함이 매력이듯이 중국화는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영웅]은 중국화의 매력을 닮아있는 것도 같았다. 하늘 천 따지, 검을 현 누를 황이랬나.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아니 뭐 그말을 하려는게 아니라, 黑白靑紅綠黃, 영웅에서 나오는 모든 색깔이 천자문에 나오는 그 흔한 말인 동시에 곱씹을 수록 깊은 맛이 우러났다.
영화의 후반부에 파검이 무명에게 남긴 두 글자, 천하 역시 나한테는 참 큰 감동이었다. 대의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과 복수를 삭혀낼 줄 아는 사람. 그가 진시황의 목까지 겨누고나서도 베지 못했어도 진정한 영웅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느날 TV명화소개에서 한 기자가 써놓은 글을 읽어보니, '천하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가?'라는 글귀가 있었다. 참 그말도 다시 생각할 수록 옳은 말이었다. 격동의 세월을 거쳐 2002년,[영웅의 출사시기] 수천년의 역사를 갖고있는 중국이지만 그 '천하'라는 두 글자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려 희생을 일구어냈으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이뤄낸 오늘의 중국의 초상은 과연 어떤 모습인가. 다수를 위해 자신의 의지를 기꺼이 버려낼 수 있는가? 그렇다면 그 천하를 위해 일개 소수민족의 역사는 그들의 문화는 외면되어야 하는가? 역시 영화는, 생각은 아이러니라는 큰 바퀴 속에서 끊임없이 얽히고 설켜있는 것 같다. 내가 좀 더 크면 이런 아이러니보다 더 큰 무엇이 있다는 걸 알게될 날이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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