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장희빈을 보고있으면 그런 생각이 든다.

timid 2006. 7. 14. 22:27

 



 





희빈과 숙종이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순간은 언제까지였을까. 사랑하긴 한걸까,

숙종은 희빈을 정말 사랑하긴 한걸까.

사랑한 여자에게 사약을 내릴만큼 그는 냉정한 사람이었나.

희빈은 숙종을 정말 사랑하긴 한걸까.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그렇게 죽을만큼 미워하면서

그녀가 얻으려고 했던 건 사랑일까, 아니면 권력일까.

장희빈은 역사적 패자의 입장에 서있다. 옛날엔 그런 생각을 미처 못했었는데, 조선 후기의 역사를 주도한 세력은 서인이었고 인현왕후는 서인, 장희빈은 남인의 심볼이나 마찬가지였다. 장희빈이 희대의 요녀로 기억되는것도 어쩌면 그녀가 결과적 패자의 입장에 있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숙종은 치세기간동안 세번의 환국을 주도했는데, 그중 두번이 인현왕후와 장희빈 사이의 대립구도와 연관이 있었다. 기사년에 있었던 두번째 환국에서는 인현왕후가 폐서인되고 장희빈이 중전의 자리에 오른 반면, 갑술환국 때는 인현왕후의 신변이 다시 복위되고 중전 자리에 있던 장희빈은 세자의 생모라는 명분으로 겨우 빈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기사년에는 인현왕후를 옹호하던 서인세력이 정계에서 대거 축축된 반면, 갑술년의 것에서는 남인들이 그런 과정을 번복했다. 두 여인의 한 남자에 대한 사랑은 권력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고, 사실인지 아닌지는 이제야 의심이 드는거지만, 여튼간에 둘 중 인현왕후가 보다 후덕하고 인자한 사람이었고 장희빈이 보다 현실적이고 사랑을 쟁취하려는 열정적인 사람이었다는 데서 둘의 희비는 매번 엇갈려야 했다.

 

역사적 평가에 있어서는 인현왕후가 당연히 승자이다. 그녀의 안위를 민심이 걱정했고 그녀의 슬픔에 민심이 함께 슬퍼하고 그녀의 죽음에 민심이 함께 울었다. 숙종도 그녀를 온전히 사랑하지 못했음을 내심 미안해했다. 인현왕후가 죽고 나서 애를 끊는 제문을 직접 작성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하지만 숙종에 대한, 그리고 권력에 대한 지독한 애증을 갖고 있던 장희빈이 사랑에 있어서만큼은 승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드라마에서는 비록 사랑도 잃고 권력도 잃고 역사의 패자로 사약이나 받고 죽게 되지만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을 원하는 사랑의 여인이었던 것이다. 역사가, 민심이, 왕이 자기에게 등을 돌리고 외면하더라도 그녀 자신은 짧은 한평생 온전히 열정적으로 살 수 있었기에 역사가 그녀를 악평하고 손가락질한대도 지금까지 그녀의 이야기가 회자되고, 사람들이 인현왕후보다도 그녀를 더 기억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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