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날이었나, 선거날이었나 여튼 정말 오랜만에 집에서 아무것도 안하고 빈둥빈둥 놀던 날이 있었다. 정말 편하고 좋긴 한데, 왠지 맨날 무슨 일이 있었다가 사라지니까 허전하다고 해야하나 그냥 마치 꼭 먹어야할 아침밥을 거른 수험생이 된 것처럼 그런 기분이 하루종일 이어지는 것만 같아 살짝 우울해지려고 할 찰나, 동생이 그러는 거다. 오늘 [슈퍼스타 감사용]하는 날이라고.,
[그거 흥행한 영화야?]
난 대뜸 그렇게 물었다. 나도 참 속물이다. 그 영화를 알기전에 먼저 흥행성적여부부터 묻는다니,
[그거 그래도 백만 명은 넘게 보지 않았어?]
[그래?]
이범수를 알게된건 오래되지 않았지만 보고나서도 왠지 낯설지 않았다. 한석규, 최민식처럼 대단한 연기로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늘 그자리에 맞는 연기로 묵묵히 조연자리를 지켜온 어엿한 충무로 사람 이범수. 그의 아마 주연으로서는 첫 영화인 듯 했다. 난 별 기대 없이 텔레비젼을 틀었다. 영화는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뵈기싫을 정도의 스토리도 아니었고 그냥 담담한 마음으로 채널을 고정했다.
감사용은 원래 야구를 하던 선수가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다가 야구가 너무 좋아서, 그 이유때문에 야구선수가 되기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선수인생은 초반부터 굴곡이 심했다. 지금 SK 와이번즈가 있고 현대 유니콘즈가 있던 인천 야구단에는 그보다 훨씬 전에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구단이 있었단다. 매번 랭킹 끄트머리를 차지하고 있던 이 구단은 지속적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을 서포터들도 변변하게 없었고, 야유 속에 매 경기를 마쳐야 했지만ㅡ 그런 구단 소속이었던 감사용이었지만, 이제 영화는 관객은 그를 주목한다. 난 이점부터가 참 마음에 들었다. 난 야구규칙만 겨우 아는 사람이라서 그당시 야구선수가 누가 있었는지 어떤 구단이 최고로 잘하고 인기도 많았는지 알수는 없지만 어쨋든 지금 이 영화가 주목하는 사람은 매번 랭킹 꼴찌였던 삼미 슈퍼스타즈에서 느즈막히 패전을 마무리했던 패전투수 감사용이다. 감사용은 이제 내가 아는 유일한 80년대 야구선수이자, 내가 기억하는 슈퍼스타 중 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삼미 슈퍼스타즈의 1승을 나도 모르게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야구 경기를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본 적도 없었던 거 같다. 감독은 담담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아웃사이더에 주목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가족들, 그가 좋아하는 것들, 그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들을 꾸밈없이 그려내면서, 무기력해져있는 내 자신도 [나도 '감사용'이 아닐까]하는 아련한 생각을 들게 했다. 내 주변을 둘러보면, 나 역시 감사용이 그런 것 처럼 내 왕팬이 되주는 고마운 엄마와, 내 '경기'를 빛내주는 바람잡이 형제도 있고, 가끔 날 설레게 하는 '은아'[윤진서]같은 사람도 있다.
결국 영화 내내 삼미는 한 승도 거두지 못했지만,[아아 은아가 잠실구장에 도착했을 때 주워들었던 야구공, 은아의 시선을 멎게 하는 화려한 불꽃놀이를 보면서 왜그렇게 마음이 아프던지.] 그래도 마지막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나서 입꼬리가 기분좋게 올라갈 수 있는 건, 그 이후 삼미의, 그리고 나의 빛나는 승리를 믿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삼미 슈퍼스타즈라는 야구단은 없다. 감사용 선수도 이젠 선수가 아니다. 하지만 내 마음 속에서, 관객들의 마음속에서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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