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불멸의 이순신]에 대한 나름의 생각.

timid 2005. 6. 22. 01:47

 작년 8월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한국방송공사가 두 가지 비장의 카드를 내놓았다. 그것도 다가서기 힘든 사극에.

하나는 [해신]이고, 나머지 하나가 [불멸의 이순신]이다.

[해신]은 HD특별기획이 어쩌고저쩌고 하는데다 캐스팅도 화려하여 방영 내내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꼭 이런 사전 요인만이 아니라 캐스팅에 걸맞는 연기자들의 멋진 연기와 사극 치고는 상상의 가미가 농후했던, 그래서 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았던 드라마였다. 얼마전 종영한 이후 올해 KBS연기대상의 유력한 대상후보로 자리매김했다.

[해신]은 내가 제대로 본 적도 없고 해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하는 것이야 내 습자지 지식의 한계를 드러내는 일 뿐이기 때문에 그냥 긴 얘기는 삼가겠다. 다만 [불멸의 이순신]이 [해신]정도의 좋은 조건을 가졌다면 지금 보다 훨씬 나은 작품이 되었을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 뿐이다.

[불멸의 이순신]

不滅. 멸하지 않는다. 참 멋진 말이다. 이순신 장군에게 참 걸맞는 칭호다.

혹자들은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지휘했던 넬슨 제독과 이순신 장군을 묶어서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글쎄, 내 개인적은 소견으로는 넬슨이 이순신을 쫓아오기엔 한참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 스페인의 무적함대는 절대왕정이 꽃피던 스페인의 전성기에 스페인 왕실의 적극적 후원에 힘입어 만들어졌다. 연전불패의 신화를 기록했지만 후에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해군에 의해 패배의 쓴잔을 들이켜야 했다.

반면 이순신은 조선의 변혁기라고 할 수 있는 7년 전란 속에 단연 돋보이는 장군이었다. 16세기, 훈구가 몰락하고 사림의 시대가 도래하여 유학의 정치적으로 구현하는 왕도정치에 힘쓰던 조선 왕실은 옛날의 송의 문치주의가 맛본 것과 유사한 위기를 직면한다. 나름대로 참 멋진 학문이었던 성리학은 퇴계, 율곡선생의 이기론이 발현, 독자적인 성리학 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색채에 정치가 가미되면서 당쟁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붕당[朋黨]이라는 칭호에 걸맞지 않게 사색당파가 갈려 한때 의로운 선비였던 관리들은 정계속에서 생존하기 위해 발버둥쳤다. 그들에게 국방과 민생은 이제 남의 이야기였다. 이가 중요하고 기가 중요한데 무[武]를 이용한 국방이 다 뭐고 경세론은 또 무엇이냐, 중요한 건 오직 성리학, 성리학 뿐이었다.

 한편 일본에서는 풍신수길이 전국을 통일하고 난립하는 영주들의 충성심을 집중시킬 명분을 찾고 있었다. 조선침략은 아주 적합한 명분이었다. 그들은 1592년 부산포 침격, 함락했고 우후죽순으로 밀고 올라왔다. 닥치는 대로 목을 베고 사지를 난자했다. 이기[理氣]를 부르짖던 관리들은 제 몸 추스리기에만 급급할 뿐 여전히 민생은 외면하고 있었다. 이 때 충심과 민초들에의 연민으로 무장한 이순신 장군은 가히 난세의 영웅이라고 하겠다. 국방은 명만을 믿으며 안일하게 지내왔던 조정관리들과 달리 그는 왜국이 침략하기 전부터 이를 감지하고 준비했으며 철저한 계산을 통해 아군의 죽음을 최소화하면서 적들을 효율적으로 무찌를 지략연구에 총력을 다했고 결국 이것은 7년 전쟁 속 23전 23승이라는 연전연승의 신화를 구축해 낼 수 있었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여기까지 와버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튼 이순신 장군은 당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까지도 그 충성심과 지략은 손꼽을만한, 말 그대로 불멸의 명장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를 재조명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았다. 1980년대 MBC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제목만 봐도 너무나 대하드라마 스러운 이 드라마에서 임진왜란을 잠시 다루었고, 그동안 내가 사극을 알고부터 쭈욱 지켜본 드라마에서도 임진왜란 속 이순신 장군 등의 이야기는 표현이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란 장면을 촬영하는데는 상당한 투자가 필요했고 이를 대하 드라마 한다는 것 자체가 제작자 쪽에서는 부담스러운 발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던 중에 [불멸의 이순신]은 이순신 장군을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드라마를 좋다고만 평가하기는 무리가 있다. 물론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제작진들의 피나는 노고를 치하하는 바이나, 이 드라마는 '이순신 소재 드라마 완성의 한 과정적' 드라마라고 평가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물론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한 실감나는 전투장면이나 화포를 이용한 전투시 회당 1000만원에 육박하는 제작비 투자에는 감탄을 금하지 못할 뿐이지만, 충분한 역사적 고찰이 되지 못한 상태의 대본은 곳곳에서 옥의 티가 발견되었고 원균과의 대립구도에서 원균을 [조선 최고의 맹장]이었다고 소개하면서 네티즌들의 분노를 산 바 있다. 또한 공식 홈페이지에 게시했던 ㅡ민초들에게 초점을 두기도 하겠다는 둥의ㅡ제작의도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도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차라리 [해신]처럼 50회 정도의, 대하드라마로서는 좀 짧은 분량이라고 할 지라도 번잡한 그래픽 효과에 시청자들의 눈을 현혹시키기에 앞서 내용의 탄탄한 구성을 도모했더라면 [불멸의 이순신]은 한층 더 완성된 드라마로 남게 되었을 것을, 아쉽다. 

난 아직도 [불멸의 이순신] 첫 회 때의 무지 멋짐을 잊을 수 없다. 전란의 웅대한 스케일보다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를 그림에 중점을 둔다던 제작의도도 참 멋있어 보였고. 첫 회 마지막 장면에서 군사들의 죽음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던 이순신의 모습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리고 매 회 '역시'라는 감탄사를 자아내게 했던 멋진 명대사들. 이순신 장군의 숭고함을 잘 그려냈다, 생각했다. 주관적 의견이지만 원작이라고 내세운 [칼의 노래]와 [불멸] 중 첫회부터 4회정도 까지는ㅡ불멸]에 비해 역사적 자료를 많이 참고했던 작가의 세심함이 눈에 보였던,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고뇌하는 내면을 잘 그려냈던 작품이었던ㅡ[칼의 노래]를 많이 참작한 것이 눈에 보였다.

이십여 회를 남겨둔 상황에서 아직 임진년은 채 넘어가지도 않았다. 앞으로 남은 7년 여를 이십여 회 안에 어떻게 '제대로' 그려낼 것인가는 제작진의 몫에 달려있다. 그들을 믿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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