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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 - the snowpiercer

timid 2013. 8. 25. 15:34

 

 

이 영화의 포스터도 관련된 사진도 많았지만 이 영화에 대한 내 감상을 딱 잡아 표현해줄 사진은 찾지 못해서 사진 없이 이야기를 풀어쓰고자 한다.

봉준호 감독은 늘 느끼는 거지만 대단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을 보는 자기만의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그렇게 어렵지 않고 재미있게 사람들에게 영화라는 거대한 매개체르 풀어낼 줄 아는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이미 그는 탁월했지만 그를 괄목할 이유는, 그전까지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순서대로 놓다보면 그의 이야기하는 방식이 점점 진화하고 있기 때문이 가장 크다. 이번 영화 [설국열차]에서 그는 그가 영화로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써 넘어야할 어려운 산을 넘었다. 하나의 '세계' 그 자체를 스크린에 내놓는 것, 그 어려운 산을 그는 정말 영리하게 넘어섰다.

 

누구나 영화를 보며 느꼈겠지만 열차안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축소판으로 보인다. 작게는 하나의 공동체일 수도 있으나 이것은 분명한 세계다. 꼬리칸과 머리칸 그 엄청난 간극을 유지함으로써 지킬수 있는 균형과 안정, 그리고 그것을 그 간극을 깸으로서 얻어낼 수 있는 자유와 평등. 한정된 공간에서 일어난 두 집단의 갈등은 현세계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1.

하나의 세계를 이끌어가는 사람에게 서열화와 질서는 가장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통제방식이다. 그안에서 일어나는 광기와 혼란, 두려움을 적절히 혼합하여 구성원들에게 더욱 그 세계를 굳건히 지키고 싶거나, 이 세계를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설국열차 안에서의 균형을 유지하며 살아온 두 지배자(자세한 언급은 하지 않겠다.)들의 존재이유는 거기에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관과 그것을 이룩해온 방식에 대한 조금의 불신도 가져본 적 없다. 방식이 약간의 희생을 요구할 순 있어도 대의는 사회의 유지에 있으니 이것 또한 정의임에 틀림없다.

 

2.

하지만 어느 사회에나 그렇듯 여기에 대항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현 체제의 유지, 그 정당성에 의심을 품고 통제에서 벗어나 좀더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 그들이 외치는 정의는 명징하나 그 정의를 위해 가는 길은 균형을 유지하려는 다수에게 막히기 일쑤이며 그로 인한 희생은 너무나 혹독하고 잔인하기까지 하다. 그 과정에서 그들 스스로 직면하게 되는 이기심, 두려움, 무질서 속에서 그들이 들어올렸던 정의의 깃발 자체를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두 가지 정의가 만나 스파크가 튈 때 사회는 발전한다. 이 영화에서는 두 가지 정의 중 누가 더 옳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둘의 충돌 과정 중 세계 전체를 뒤집어버리는 이변이 일어나면서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그 이변은 스파크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으며, 사실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또다른 이야기의 시작이기도 하다. 무결의 눈덮인 벌판위에 북극곰은 살아남은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는 단서가 된다.

평등과 질서, 그 둘 중 어떤 정의를 선택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무엇이든 보고있는 너, 관객이 어느 것을 선택하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여보는 것. 나는 이 영화를 보고 오히려 그렇게 사는 것이 이 영화가 제시하고 있는 방향 아닐까? 그래야 이 세상은 '커티스 혁명'같은 스파크로 또다른 발전의 계기를 맞이하게 될 테니까.

하지만 만약 이런 이야기에 치중했다면 영화는 따분한 정치극이 되었을 것이고 그걸 통해 봉준호가 원하는 메시지를 가장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해도 그는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재기가 넘치고 치밀한 사람이니까.

 

3.

그는 열차 안의 다양한 군상들을 치밀하게 만들었고 그들이 서로 맞부딪히는 장면을 스펙터클하고 사실적으로 그려냄으로써 또다른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각 인물들(메이슨 총리, 길리엄, 머릿칸의 교사 등)의 묘사부분이나,  남궁민수와 그의 딸 요나의 이야기, 커티스가 혁명을 꿈꾸게 된 이야기, 월포드의 엔진이 가진 비밀 등은 영화에서 양념처럼 그 맛을 살리는 내러티브 하나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를 보고나와 친구들끼리 진지하고도 흥미롭게 이야기를 해나가기에 손색없는 재료들이었다. 그가 이 영화로 얼마나 많은 관객을 끌어모았다거나 이 영화가 어떤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다거나 하는 문제는 더이상 봉준호의 영화세계에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내가 기대하는 것은 오로지 그의 다음 영화이다. 그의 창의력과 그것을 표현해내는 능력, 배우들과 일구어내는 시너지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며 그가 풀어낼 이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