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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하다

timid 2013. 5. 18. 16:57

 

 

 

나는 사극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사극에서 사골처럼 우려먹는 장희빈 이야기를 좋아한다. 어렸을 땐 못된 그녀가 결국엔 임금에게 그 악행이 탄로나 그동안 얻었던 부귀영화를 모두 뺏기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에서 묘하게 희열을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만화로 된 사씨남정기와 장희빈을 주제로 한 숱한 드라마들을 보며 나는 드라마가 보여주는 시선 그대로 사악한 장희빈과 교씨를 미워하고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현왕후와 사씨를 동경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생각이 바뀐 것은 2006년에 재방송으로 보게 된 2004년 깨 김혜수가 장희빈으로 출연했던 KBS 대하드라마 <장희빈>과, 그 즈음에 함께 읽게 된 역사가 이덕일의 책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이하 <송시열>)라는 책 때문이었다. 이덕일의 시선은 정론들에 비해 삐딱하고 다소 음모론스럽기도 하지만 나름의 일리가 있었다. <송시열>에서는 광해군이 그동안 차곡히 쌓아놓은 치적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가 선조의 첩의 소실이었다는 것을 마뜩찮게 여겼던데다가 '패륜'이라 명명지어도 할말 없을 몇 가지 실정을 꼬투리 잡아 그와, 그의 지지세력이었던 동인들(나중에 남인 북인 대북인 소북인으로 하염업이 갈래질치긴했지만 어쨌든 싹다모아 동인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을 축출해내고 반정을 일으킨 서인들의 이야기이다. 그들이 정권을 잡고 '신권정치'라는 것을 표방한 것은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조선의 왕들은, 그들의 왕권은 형편없이 주저 앉고 있었다.

그덕에 열등감과 자존심만 억센 인조는 그를 추대한 서인들의 눈치살에, 열등감에 스스로를 들들 볶아대다가, 결국 실정에 모자라그가 무시하고만 있었던 오랑캐들에게 강토를 짓밟혔으며 자기 아들을 독살하는[물론 정론은 아니다] 과오까지 범했다.

죽은 형 대신 왕위에 올라간 효종은 정전에 득실한 서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왕권을 강화시키고 나아가 아버지와 그의 나라 조선에 쓰디쓴 굴욕을 남긴 후금의 오랑캐(청나라)에게 복수하기위해 북벌의 원대한 꿈을 꾸었으나 출정을 앞둔 어느날밤 홀연히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차기 왕이었던 현종은 서인과 [반정 이후 겨우 살아남은 동인의 한 부류]남인들 사이에서 아무 짝에도 없는 예송 논쟁[아버지가 죽은 후 할아버지 인조의 계비 장렬왕후가 상복을 얼마나 입어야 하냐]에 시달리며 별다른 치적없이 세월을 보냈다.

 

숙종 이 순이 왕이 되기 전 그의 아버지들의 역사는 대략 이러했다. 그는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었을까? 만약 나였다면 무력해져만 가는 왕실과 왕권에 강한 책임감을 느끼면서도 동시에 지긋지긋한 서인들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날 묘책을 강구했을 것이다.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모두 서인들과의 권력 다툼에 치세를 소비해버렸고 대부분 그들이 위시했던 '고매하신 성리학'과 그들이 지독히도 원하는 신권정치에 왕으로서 백성을 위한 어떠한 치적도 제대로 남기지 못했으니까. 나 역시 그저그런 패배한 왕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싶지도 않고 어떻게든 그들을 견제하여 강건한 왕권국가로 조선을 다시 일으키고 싶었을 것이다.

 

그러던 차에 그가 만나게 된 여인이 옥정이었다. 서인들은 왕실의 후사 운운하며 본인들의 여식들을 내세워 정략결혼을 노렸지만 남인이 뒤에서 밀어주고 있던 옥정은 그냥 그저그런 비슷비슷한 서인측 반가의 규수들과는 다른 매력을 가졌으니까. 정쟁의 균형을 위해서도, 또 지겨운 권력 싸움의 도일처로서도 옥정은 그에게 필요한 여인이었다. 

 

여기서 장옥정의 프로필을 잠깐 살펴볼까? 그녀의 아버지는 역관으로서는 최고의 직위에 올랐던 명망있는 공직자였고 그의 오빠는 무관으로서 꽤 이름을 날리던 미장부였다. 숙종 초 남인들의 환국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죽임 당했으며 집안은 풍비박산났다. 옥정은 행복한 시기에 태어나 불운하게 자라다가 [어떤 이유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남인들의 지원사격이 큰 기여를 햇을 것으로 보인다.]궁녀로 입궁하게 된다. 남인측이었던 증조할머니 장렬왕후(자의대비)의 수발나인으로 들어가 숙종의 눈에 띄게 된 그녀는 총애를 받다가 서인들에 의해 견제받고 출궁당했다가 다시 재입궁하게 되는 고초를 치룬다. 참으로 드라마틱한 생애가 아닌가? 어릴 때에는 갖은 귀애를 받으며 양반들 못지 않게 부유한 중인으로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그녀가 남인들에 의해 여인으로서의 행복한 삶을 [자의였든 타의였든] 버리고 'all or nothing' 도박과 같은 궁중생활을 선택했고 왕의 사랑을 얻었지만 거대 세력과 궁중 시기어린 눈총들에 의해 궐 밖으로 끌려간 적도 있다. 아아, 그때의 그녀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자의와 상관없이 생이별을 겪는 실연의 아픔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다시 궐 안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버리면 그녀는 누구의 여자로서도 살 수 없이 그당시 여인의 삶으로서는 죽는 것보다도 못한 삶을 살아야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궁안에 들어갈 때 실낱같게 나마 품었던-아마도 가족들을 그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살뜰하게 보살필 수 있을 거라는-작은 희망조차 소멸되어가는 것을 경험했을 것이다. 절망의 구렁텅이 안에 죽은 듯이 살 바에는 궁중생활을 선택했던 몇 년 전의 과감함을 상기했을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다시 궁안으로 들어가 다시 왕의 사랑도 얻고 그를 끌어냈던 모든 것 위에 올라서서 복수하리라 다짐도 했을 것이다. 그녀가 정말 팜므파탈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개연성 앞에서 나쁜 여자로서의 삶은 필연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착하게 남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다가 모든 것을 잃을 바에야 '내'손으로 사랑이든 권력이든 쟁취해내어 '내'뜻대로 사는 것을 갈망하는 것이 그녀에게는 어쩌면 당연한 것 아니었을까? 그녀에게는 당시 양반가 규수에게는 찾아보기 힘든 생에 분명한 의지와 에너지가 열망이 있었을 것이고 아마 숙종이 그것에 끌린 것은 정쟁에서 승리하기 위함보다도 단순히 '매혹됨' 그 자체가 먼저였으리라 생각한다.

 

게다가 둘의 목표는 같았다. 서인들 위에 올라서는 것. 숙종은 신권의 균형 위에 왕권을 세우고 싶었고 옥정은 자신을 밀어낸 것들 위에 군림하고 싶었을 것이다. 영리한 그들은 서로가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동시에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이러한 나의 생각과 얼추 비슷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무슨 조선후기 여류 패션디자이너 같은 소리는 집어치우고 별로 관심도 없다. 그냥 지금 그 시점을 그대로 이어나가면서 이야기를 끌어나가기만 해도 [태쁘님이 연기를 심하게 못하지 않는 이상] 나는 이 드라마를 즐겁게 끝까지 완주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글을 쓰기 위해 찾아본 위키백과 속 장옥정에 대한 내용은 매우 흥미롭다. 그녀는 나쁜 여자이기 전에 삶에 대한 열정을 가진 여자였고 스스로 선택했으며 사랑하는 사람을 열렬히 사랑해서 그 사람의 아기를 낳았고 권력을 쟁취해냈으며 그녀를 멸시했던 모드 것들을 발 아래 두는 영화도 누렸다. 역사에 어떻게 기록된다 한들 그것이 그녀에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그녀가 살고자 했던 것은 역사 속이 아니라 그녀가 살고 있던 '그녀의 바로 지금 이 순간' 자체였던 것을.  그런 그녀의 삶을 재조명해서 이제 막 정쟁에 뛰어든 장면을 전개중인 이 드라마가 어떻게 다음을 이어갈지도 기대가 된다. 포스터의 두사람에게 어려있는 쓸쓸함과 슬픔은 또 어떻게 그려지게 될까?

 

 [참고: http://ko.wikipedia.org/wiki/%ED%9D%AC%EB%B9%88_%EC%9E%A5%EC%94%A8#.EC.B4.88.EB.85.84.EA.B8.B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