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6일에 다녀온 전시회 감상평을 이제야 정리한다. 담주에는 훈베르트 바서의 전시회를 가기로 했으니 그 전엔 정리를 해놔야 될 거 같아서. 샤갈은 잘 모르고 그의 작품이라면 그냥 남녀가 하늘을 떠 다니는 그림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아래와 같은(생일 선물). 난 대학생이 되기 전까진 그냥 대수롭지 않은 작가라고 생각해왔다. 사랑을 주제로 하는 예술 작품은 너무나 많고 샤갈 역시 그런 너무나 많은 작품 중 하나의 유파를 형성한 작가로만 생각했다. 좀 유치한 걸로 봐선 내 스타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턴가? 그가 사용하는 색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 전시회도 그 색채에 관심을 갖고 가게 된 것이었다.
내 생각이 완전히 틀린 건 아니었다. 그는 사랑을 주제로 숱하게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그의 작품의 내용은 사랑, 사랑의 기쁨, 사랑에 빠진 사람의 꿈같은 것들이었으며 그의 작품의 형식은 색깔로 설명할 수 있다. 아니, 그의 형식은 곧 내용이었고 내용이 곧 형식이었다고 해도 무방할 거 같다. 그는 사랑을 색채로 표현할 줄 알았고 그의 색채에선 사랑이 묻어나왔다. 그가 세기에 기록될 명 화가로 남은 이유는 거기에 있는 것 같다.
샤갈의 한국 전시회의 간판이 되었던 이 그림은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초기 그는 러시아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차가우면서도 기품이 어린 러시아의 풍광들 덕분인지 초기 그의 작품은 우리가 흔히 아는 다른 작품들에 비해 '정갈한' 느낌을 준다. 화사한 색깔에서 한 톤 정도 다운된 느낌, 유화 특유의 '덕지덕지'한 느낌을 뺀 붓터치가 거의 보이지 않는 깨끗한 그림들. 그 중에서 내 눈길을 끈 건
바로 꿈꾸는 농부(위)이다. 파란색이 이렇게도 몽환적인 색깔이었나? 싶을 정도이다. 색깔을 그렇게 많이 섞지도 않았는데 다양하게 사용된 것도 아닌데 이 그림은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았다. 과거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는 건지 아직 이루지 못한 미래를 기대하는건지 농부의 표정은 -표정만 보면 풉 웃음이 터져나오게 이상하지만, 전체적인 그림과 어울리면서 그저 아련하기만 하다. 거기에 농부가 여물을 주고 있는 말의 그윽한 눈빛은 그림이 주는 몽롱한 분위기의 정점을 찍는다. 그렇게 대단해보이지도 않는 그림에 나는 한참 정신이 팔려 있었다.
그는 두 명의 여인을 사랑했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활동 장소를 옮길 때마다 또는 그 이외의 이유로도 여러 여인과 교류하며 화려한 전력을 쌓은 것과는 달리 그의 작품인생에는 딱 두 여인이었다. 첫 아내 벨라와, 벨라가 죽고 8년 후에 만난 바바였다.
사랑하는 동안은 그의 그림은 참 일관되게 행복했다. 그림 속 인물들이 행복해보인다는 게 아니고 그냥 그림이 행복해보였다. 샤갈은 표정 묘사는 예쁘게 하지 않는? 또는 못하는 화가였을지 모르나 그가 그린 행복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그 찰나의 순간에서 묻어나왔고 그 그림 속 색깔로 드러났다. 한 번도 자화상을 그린 적 없지만 그림을 그리는 내내 그가 행복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림 속에 없지만 그림 속에 드러난 그는 행복이었고 사랑이었다. 그가 거장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가 그것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 글은 길게는 못쓰겠다. 지금 이글을 완성하고 있는 나는 이 전시회를 다녀오기 1년 반 후의 나이고
그때의 감흥을 적어놓은 것이 많지 않다. 앞으로 전시회는 두루두루 계속 다닐 것이고
그 기록은 싸이월드나 여기에 계속 남길 작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