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처럼 착하신 주인할머니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를 마구 때려준것도 다 눈치가 모자랐기 때문이야. 사람의 마음으로 개를 판단했기 때문이지. 눈치가 모자라면 생각도 짧아져. 그래서 우리 엄마가 '새끼를 잡아먹었다'고 험한 말을 해대면서 엄마를 때린 거야. 아니 도대체 우리 엄마가 왜 새끼를 잡아먹겠어! 그분들은 개의 마음으로 개의 일을 판단하지 못했고 개의 마음을 헤아리는 눈치가 전혀 없었던 거지.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자라. 사람들에게 개의 눈치를 봐달란 얘기가 아니야. 사람들끼리의 눈치라도 잘 살피라는 말이지.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되었든 제멋대로 하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 가는 사람들이 잘난 사람 대접 받고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 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들은 웃어. 웃지 않기가 힘들지. 그야말로 개수작이야. 사람들의 말 중에 '지나가는 개가 웃는다'는 말이 바로 이거야.
개의 말이 너무 건방졌다면 미안해. 다시는 안 그럴게, 하지만 내 말을 틀어막지는 말아줘.」
「 나는 모른다. 주인님은 죽어서 땅 밑으로 들어갔지만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주인님의 관이 땅 속으로 들어갈 때 나는 우우우우 울었지만, 죽음이 무엇인지를 알았기 때문에 운 것이 아니라,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를 도무지 알 길이 없어서 나는 울었다.
사람의 몸을 나무 상자에 넣고 뚜껑에 못질을 해서 땅에 파묻는 것이 죽음인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주인님의 몸에서 풍기던 그 경유냄새와 밤바다에서 주인님이 나누어준 그 미역국 맛과 가을에 마당에서 도끼로 장작을 쪼개던 주인님의 그 아름다운 근육과 땀방울은 다 어디로 사라지는 것인지를 나는 알 도리가 없었다.(중략)주인님은 어디에 계시나. 주인님은 왜 땅 속에 계시나. 나는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음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죽음을 인정할 수 없었다. 이럴 수는 없고 이럴 리가 없고 이래야 할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
- 김 훈, [개] 중에서
언어미학의 마에스트로, 김 훈. 읽을 때 마다 겹겹이 밀려오는 색다른 감동, 색다른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