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말죽거리 잔혹사

timid 2006. 6. 26. 00:56

 

1978년 우리들의 학원 액션 로망, 말죽거리 잔혹사.

처음 이 영화를 보게 된건 고2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즉 실미도와 태극기가 한참 관객들을 끌어들일 그쯤이었다. 그 때 시세를 잘못타서 괜찮은 영화들이 많이 피를 봤다. 말죽거리 잔혹사도 그 중 하나다. 그 때 실미도를 친구들이랑 보러갔다가 전부 매진이 되버려서 '어쩔 수 없이' 이 영화를 보게 되었다. 그냥 낄낄대며 좋아라했다. 대사의 절반이 욕이고, 입시를 앞둔 고등학생이라는 것들이 하는 짓은 싸움질에 연애질에 욕질뿐이었다. 나는 은연 중에 소심하고 조용하던 전학생 권상우가 퇴학을 당하고 검정고시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서 쯧쯧 혀를 찼었던 것도 같다.

그 땐 학교 안에 있는 사람이라서 그랬었나 보다. 나란 사람은 너무 틀에 박히고 박힌 사람이라서, 학교 밖으로 자꾸 나가려고만하는 '로망'의 진실이 무언지 제대로 곱씹어볼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가 이번 주말이었나, 아니 그 전이었나. 문득 텔레비젼에서 이 영화를 하는 걸 다시 보게 되었다. 난 그 때 절실하게 웃겼던 '욕의 재발견'을 다시 체험하고자 그냥 멍하니 텔레비젼을 틀어놓고 있었는데, 이런. 내가 그 때 느꼈던 우스움과 권상우 이정진 한가인에 대한 비웃음 내지는 동정 따위는 다 어디간건지. 내가 느끼는 건 그 세 사람에 대한 동정이 아니라 오히려 뭐랄까 그냥 내가 하지못한 것을 해낸 사람들에 대한 영웅심리랄까. 오히려 동정이 느껴지는 건 세 사람이 속해있는 학교라는 낡고 고리타분한 공간이었고 그속에 갇혀있기에 슬픈 1년전의 나이고 영화 속의 그들에게로부터였다. 그들은 입시를 앞둔 학생답지않게 싸움질 연애질을 일삼고 있기에 한심한 것이 아니라, 입시를 앞뒀었기에 싸움질 연애질을 일삼았던 것이다.

1978년, 1978년이 어떤 시기였었나. 브루스 리의 쌍절곤과 대갈일성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뭇 남성들을 불태웠고 라디오에선 비오는 날이면 언제나 one summer night이 은은하게 들려오던 그런 낭만의 시대였었나. 맞다. 박정희의 유신정권의 패도가 극에 달하고 폭력앞에 무릎꿇은 민주주의는, 그 진실은 땅에 떨어진 음울한 시대였었나. 그것도 맞다. 그 속에서 고등학생들이 배우는 것은 낭만이기도 했으며 폭력이기도 했다. 폭력적 낭만, 낭만적 폭력이 엇갈리던 시기였다. 감독은 그 혼란스런 시기에 대해서는 은근하게 크로키만을 해놨을 뿐이라서, 무엇이 옳은지, 무엇이 분명한 것인지는 나도 모르겠다. 교실에는 군복을 입은 선생님인지 장교님인지가 왔다갔다하며 학생들의 개도에 앞장서고, 군복을 입은 그 사람이 나가면 그 사람을 따르던 선도부 나부랭이들이 학생들의 개도에 앞장서도, 그들이 나가면 교실 안에 또 다른 강자가 학생들의 개도에 앞장선다. 개도가 改導인지 개[犬]導인지는 내 알 바 아니다. 영화 속 권상우 이정진 한가인은 그 속에서 자기 나름의 길을 찾아갔던 것이고, 그 결과가 정말 로망스였든 싸구려 3류 학원물이 되었든, 그것이 옳고 그른 것인가의 여부는 내가 결정할 일이 아닌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78년 그들의 '오늘'일 뿐이다.

권상우가 학교를 나오고나서, 그의 친구 '햄버거' 역시 검정고시를 보러 학교에서 나온다. 그러는 사이에 권상우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브루스 리의 절권도는 저만치 멀어지고 사람들 사이에선 재키챤의 취권이 유행이다. 오늘날엔 재키챤? 흥 셔주지도 않지, 어쨋든간에 괴성을 지르며 쌍절곤을 휘두르던 브루스 리건, 헤롱헤롱 정신 못차리고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재키챤이든건간에 청춘에겐 뒤돌아보고 웃음지을 수 있게하는 '그 시절 로망'이 숨쉬고 있기에 아직 아름다울 수 있는게 아닐까. 여튼 다시본 이 영화는 나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정말 형용할 수 없는 욕과 폭력이 난무한 그 속에서 감독은 조근조근 마치 하나의 신호처럼 관객들에게 무엇이 옳은것인지, 당신의 청춘은 지금 어떤 모습을 하고있는지 묻고있었다. 그동안 닫혀있던 내 귀가 활짝. 유하 감독이 스크린 속 시인이라는 말에 새삼 공감하게 만들었다. [비열한 거리]도 얼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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