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에 치여살다보니까 내가 금요일날 간송미술관에 다녀왔단 사실도 잊고있었다.
그때 견문, 감상 따위를 막스베버[ㅆㅂㄹㅁ]책 뒤편 여백에 마구 휘갈겨 쓴 기록을 그대로 적고자 한다.
나는 그동안 더러는 후회하는 결정을 하면서 살아왔다. 오늘 아침도 두가지 결정을 두고 고민하다가 결국 너무 더운 오후, 어딘지도 모르는 간송미술관을 찾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다행히 예상외로 내 결정을 후회되지 않았다. 교과서에 인쇄되어 나오는 문화제를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정말 100년에 한번 올까 말까한 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한성대입구를 나와서 도보10분을 가면 나온다고 했는데 아무리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찾아도 도저히 미술관이라곤 보이질 않아서 난감했다. 다행히 지나가는 분께 여쭤봐서 성북초등학교 옆에 아담하고 소박한 간송미술관을 발견했다. [간송탄생100주년기념 특별대전] 써내려제낀 필체가 힘이 있으면서도 미술관 전체적인 뭐라고해야할까, 소박하지만 기품을 잃지않는 분위기를 대표하는 듯 했다. 견문이 워낙 적고 한국미술에는 더더욱 문외한인 나라서 이런 감상이라도 읽으시는 분들이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1층은 그림과 서예작 위주로, 2층은 조형물과 풍속화, 그동안 관람객들이 접할 수 없던 고전들까지를 위주로 비치되어 있었다. 한국미술에 관심이 많은 분들로, 좁은 열람실은 북적북적. 단체관람으로 성의없이 그냥 지나칠 사람들이나, 나처럼 교양없이 사진을 찍는[너무 예뻐서 나도모르게 그만 청자를 찍어버리고 말았다. 주변 사람들의 눈치란것은=_-;]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다. 다만 다들 관심과 찬사를 입밖으로 표출해내느라 그분들의 품위 따위는 일단 저만치 뒤로뒤로 제쳐두고 다들 작품 하나하나에 몰입해계셨다. 난 혼자가서 떠드는 대열에 합류할순 없었지만, 그대신 다른 사람들이 이 그림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조용히 엿들을 수가 있었다. 엿듣는 건 좋은 게 아니지만 그림에 대한 감상을 엿듣는것은 오히려 그림을 보는 내 눈을 조금 크게 만들어주는 기제가 되어주어 고마웠다.
나는 한국화라고 하면 특히 조선시대를 위주로 [15~16세기를 묶어 문인화, 17~18세기를 묶어 풍속화, 진경산수화가 발달했다.] 뭐 이정도까지밖에 달리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국사교과서 문화사에 나오는 부분만 조금 읽어봤을 뿐이었던 나에게 오늘의 관람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림을 보면서 절실하게 느낀 건 그동안 내가 동양화, 한국화에 내가 얼마나 무관심하고 무지했는지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후회였다.
묵번짐으로, 특기할만한 기법도 없이 어쩜 그렇게 섬세함과 거침없음의 극간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인지. 서양화의 역사는 자연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 따위로 구분이 가지만 한국 미술의 경계는 모호한 듯 했다. 한폭의 그림 안에서도 인상적인 표현과 사실적 묘사 모두를 아우르는, 그러면서도 그림 전체가 이루는 조화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그런 우리의 아름다움은 서양의 그것과 비견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그것보다 한수위의 것이라고 자랑할 만했다.
1층에 비치된 그림의 화가는 대부분 조선후기의 김홍도, 정선, 변상벽, 심사정 등이었다.[길게 떠들기 참조] "김홍도=풍속화가"라고 도식화되어있던 내 머리속은 오늘부로 새롭게 정리되야겠다. 물론 그의 풍속화에서 느껴지는 소박한 아름다움, 서민들에 대한 따스한 시선, 해학의 감칠맛은 더이상 두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지만 그는 풍경화와 정물화에서도 특출난 사람이었다. <滄波浪鷗:파란 파도물결과 갈매기>라는 풍경화는 파랑의 역동적임과 기암의 무늬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내 눈길을 끌던 인상적 작품은, 바로 <馬上聽鶯:말위에서 꾀꼬리소리를 듣다>였다. 말 그대로 말위에 샌님하나가 나무위에 꾀꼬리 지저귀는 모습을 '어디서나는소리지?'하고 신기한듯 바라보고있고 말을 끄는 머슴도 샌님의 시선과 같은 시선으로 꾀꼬리를 바라보고 있다. 배경묘사도 없고 원근법따위는 무시했지만 마치 내가 저들을 정말로 내 눈앞에 두고있는 것 처럼, 그들의 모습은 진솔하면서도 귀엽다.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건지 생각하면서 스리슬쩍 얼굴엔 미소가 배이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김홍도의 <마상청앵>
난 이곳에서 변상벽이라는 화가를 처음 알게되었다. 변상벽은 동물이 있는 그림을 참 귀여우면서도 멋진 것이 내 맘에 꼭 들었다. 그의 작품중에는 <雌雄將雛 :암탉과 수탉이 병아리를 거느리다>와 <菊庭秋猫: 가을 국화밭의 고양이>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 특히 고양이의 경우, 서양사람들 혹은 일반 사람들이 고양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묘한 눈매보다도, 화가 변상벽이 주목한 것은 다름아닌 보송보송한 고양이의 털이었다. 부드러운 먹번짐부터 세세한 털표현까지.
복상벽의 <묘작도>, 내가 본 <국정추묘>는 웹상에 이미지가 없다.
서예는 말그대로 글씨로 부릴 수 있는 재주이다. 서예 안에는 쓴 사람의 인품이 닮겨있고 그당시 기분이
응축되어있는 듯도 했다. 身言書判이란 옛말이 틀리지 않다. 추사 김정희의 글씨에는 우직함과 힘이 느껴졌다. 뭐라고 써있었더라. 서예는 기억을 오래 못한게 후회가 된다. 1층의 이야기는 일단 여기까지하고 2층 이야기는 천천히 다음에 해야겠다.
주드로를 들어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다.
"세 시간 옷을 골라 차려 입었지만 입고나오면 3분만에 나온 듯 하다. 그래서 그는 멋진 남자이자 베스트드레서이다."
우리 그림엔 응축된 철학의 깊은 맛이 녹아내려져 있어도 표현은 간결하다. 깊고 간결한 멋. 정말 멋지다. 이 세상엔 화려하진 속이 비어있는 허무한 멋들이 얼마나 허다한가. 우린 그런 점에서 우리의 미술에, 우리의 아름다움에 주목할 필요가 절실한 지도 모른다.
난 문득 주드로의 멋짐이 한국의 미술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으로 혼자 비식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