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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스크랩] 한일협정, 일제 과거청산의 걸림돌?

timid 2005. 8. 27. 15:02

‘한일협정’ 日 과거청산의 ‘걸림돌?’ 

한일기본조약 제2조 표현 모호 “모든 과거사 청산 문제 걸려있어” 

미디어다음 / 김준진, 김태형 기자 

 
26일 외교통상부가 196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를 대거 공개한 가운데 협정에 담긴 조항이 일본에게 과거 청산을 기피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비판적 시각이 일고 있다. 나아가 양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던 한일협정이 재개정 돼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한일양국은 1965년 당시 한일협정을 맺으면서 기본조약 제2조로 “1910년 8월22일 및 그 이전에 대한제국과 일본제국 간에 체결된 모든 조약 및 협정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고 합의했다. 이 조항에 포함된 ‘이미 무효’(already null and void)라는 표현이 바로 일본에게 일제 강점기 합법화와 과거 청산 기피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 ‘이미 무효’라는 구체적 시점이 언제인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일병합은 유효? 무효?"

우리 정부는 기본조약 제2조에 따라 1910년 8월22일 한일병합의 체결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법에 의해 강요된 것으로 애초부터 ‘이미’ 무효였다고 해석해 왔다.

반면 일본 정부의 공식 해석은 병합조약은 일본제국과 대한제국 사이에서 정당한 절차를 밟아 체결된 것으로서 당시에는 유효했고, 다만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부터 이 조약이 효력을 잃었다는 것.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한일병합조약에 법적인 문제가 없기에 유효했고, 같은 맥락에서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일제 강점기 하 한국인의 피해에 대한 법적인 손해배상 책임도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이처럼 ‘동상이몽’ 해석을 불러온 ‘이미 무효’라는 표현은 한일협정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삽입됐다는 것이 학계의 중론이다. 한국은 경제재건을 위해 일본의 ‘현금’조달이 필요했고, 일본은 제국주의에 따른 주변국 식민지배와 제2차세계대전의 명분을 끝까지 포기할 수 없었던 것. 서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서 ‘이미’라는 문구를 끼워넣음으로 각자 입맛에 맛는 해석이 가능했고 한일협정까지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은 1995년 10월5일 무라야마 수상이 “일한 병합조약은 당시의 국제관계 등 역사적 사정 가운데서 법적으로 유효하게 체결됐다”고 말하는 등 한일협정 이후 일본 극우세력을 포함한 정계에서 과거청산 회피 논리로 이를 꾸준히 이용해 왔다.


"모든 과거사 청산의 걸림돌...간도 문제도 걸려 있어"
정부 "한일협정 재협상 검토 안 해"

노영돈 인천대(국제법) 교수는 “일본 내 양심세력들도 한일병합조약은 합법이지만 부당했을 뿐이다고 말할 정도로 일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식민지배를 불법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한일협정이 그 근거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교수는 “그 당시 상황 때문에 애매모호한 표현으로 양국이 넘어갔다면 후대에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며 “국가 신뢰도를 우려해 잘못된 국가간 협정을 그대로 묵인하지 말고 별도의 조약을 체결하거나 필요하다면 재개정을 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장희 한국외대(국제법) 교수도 “모든 과거사 청산 문제와 배상금 지급문제, 간도협약 문제 등 모든 사안이 이 기본조약 제2조를 둘러싸고 벌어진다”며 “물론 그 근본적인 배경에는 대공산권 봉쇄전략의 일환으로 마련된 샌프란시스코 조약도 자리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한일양국이 기본조약 제2조에서 언급된 무효 시점을 1910년 이전으로 앞당겨 명확히 합의해야 한다”며 “이 경우 1905년 을사조약에 따라 일본이 우리를 대신해서 조약을 체결했던 1909년 청일 간도협약도 명백히 효력이 없어진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한일협정 외교문서를 공개하면서 한일협정의 재협상 또는 개정은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한일협정 회의록 분석 결과 일본군 위안부 등 반인도적 불법행위에 대해 일본 정부의 법적인 책임이 남은 것으로 판단, 일본의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