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상하게 책 욕심이 많아져서 문제집 두어권 사면 끼워사기 식으로
엄마한테 몰래몰래 뻥치고 책을 [거듭해 강조하건대 평소 내가 사던 것보다]
좀 많이사버리고 있다.
그 와중에 작년에 봤지만 다시 사버린 김훈의 [칼의 노래]도 끼어있고
유행이 한박자 늦은; 댄 브라운의 [다빈치코드]원전도 끼어있다.
[다빈치코드]는 주위 사람들이 번역한게 더 어렵다는 얘기도 있고 해서 큰맘먹고 원전을
산건데
일단 단어 수준이... 비겁한 변명일지 모르지만 거기서 주로 다루고 있는 것이 고고학, 암호맞추기인데다가 가끔 방언마냥 터져나오는 불어의 압박이란..
여튼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스릴러라고 생각하면 흥미만점, 흡입력도 꽤 세다.
그리고 어제 김훈의 [칼의 노래]를 받았다. 10부터 12시 반정도까지 쭈욱 읽었다.
작년에 읽을때는 도서관 만기일 맞추느라 허겁지겁 읽느라 이게 뭔 얘긴지 제대로 단어를 씹지도 않고 그냥 목구멍으로 굴리는 기분이라서 영 그랬는데
역시 내 책이 되고 나니까 느긋해지고 조곤조곤 읽게 되는것이,
가끔 책 사고 후회한적이 많았는데 이 책은 후회하지 않을듯하다.
그게 일부러 두권짜리 종이책대신 양장본을 고른 이유이기도 하지만
[칼의 노래]도 참 흥미로운 소설이다. 내가 요즘 하는 빠순이 짓과 연관이 없지 않지만
빠순이 짓 때문에 이 소설을 산 건 아니다.
드라마[불멸의 이순신]은 두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하나는 김탁환의 [불멸의 이순신]이고 또 하나는 김훈의 [칼의 노래]다.
엄밀히 말하자면 김탁환의 소설은 시나리오와 작품 전체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교과서쯤 되는것이고 김훈의 소설은 그것에 그냥 참고자료로만 이용되는 참고서쯤 되려나.
김훈의 소설이 더 리얼리즘이 강하고 더 이순신 장군의 내면에 근접한 것은 말할것도 없기에
왜 이 소설이 '교과서'가 되지않았느냐고 묻는다면 답은 '그럴수밖에'이다.
작품성을 떠나서 김탁환의 소설은 이순신의 요람에서 무덤까지를 쭈욱 쓴 대하소설이고
김훈의 소설은 두번째 백의 종군 이후 명량해전과 노량해전을 치루었던 이순신 순국 2년 전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니까
명색이 100부작 사극이었으니 당연히 작가가 손이 갔던건 김탁환의 소설이었다.
하지만 그건 경력없고 아직 글발이 다 서지 못한 작가의 능력부족이고, 실수였다.
사극은 영상 픽션이다. 그 원작마저 픽션이라면 사극[史劇]이라는 장르의 특색은 퇴색할수밖에 없고 그래서 작가와 연출자가 싸잡혀서 네티즌들에게 욕먹는것도 당연한것이다.
그러면서 무슨 뭐가어째?? 사극의 역사를 다시써??[흥분]
얘기가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왔는지-_- 내가 말하려는건 이게 아니라
여튼 김훈의 소설은 깊다.
이순신 1인칭의 소설이다. 그의 2년 남짓하는 말년의 시간동안 그가 느꼈을만한 그에게 일어났음 직한 감정의 변화를 담담하게, 이순신답게 잘 써내려갔다.
이 소설을 쭉 읽어가면서 내가 [다빈치코드]에서 느낀 약간의 흥미와 감동을 생각했다.
그것이 얼마나 얄팍하고 천박했던 것인가를 새삼 느끼면서.
나중에 내가 한국어를 배우는 외국인을 만나게된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물론 이것도 내가 읽는 [다빈치]만큼이나 단어의 압박이 셀테지만
이 사람이 진정한 한국인의 영웅이라고.
당신들이 말하는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나 스페인의 넬리만큼 요란뻑쩍지근하지 못해 미안하지만
한국인의 진정한 영웅이기도 했던 그 마저도 내면속엔 입밖으로 꺼낼수조차 없던 큰 고뇌가 숨쉬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센ㅡ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