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라보는 열 일곱 개의 시선 中
[요약하자면 정치적 삶에서의 용기는 오로지 자신의 사적인 이익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가능한 정치적 책임감이라는 것이 고대 그리스의 지혜였으며 아렌트의 주장이다. 모두가 당연히 말할 수 있는 시대에 말하는 것은 용기가 아니다. 자신의 이익에 집착해 말해야할 것을 말하지 ㅇ낳고, 어둠의 시대가 왔다고 하여 해야할 말을 하지 않고 침묵하는 것은 정치적 무책임이며 방기이다. 진정 말이 힘을 발휘하는 시대는 권력이 인간의 견해를 억압하는 어둠의 시대이다. 어둠의 시대에서 진정 말할 수 있는 자가 있을 때, 한 사회는 정치적으로 자유롭고 풍성한 사회가 된다. - 84쪽, 소크라테스, 철학하는 삶을 시작하다. 중 ]
[그러나 정치사회가 개인이 노동해서 얻은 재산권을 절대적으로 보장하려는 목적으로 성립된다는 로크의 발상 자체에 내적으로 자리하고 있는 재산권의 지나친 비중과 실제 현대 자유주의 역사에서 시종일관 나타나는 전반적인 정치 참여에 대한 무관심은 사적 소유가 정치적 사안에 대해 책임질 숭 ㅣㅆ는 한 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증명한다는 오랜 인류의 역사적 지혜를 지워버렸다. 경제적 권리만ㅇ르 강조하는 우리 시대의 자유주의가 안고 있는 비극 중의 하나가 바로 여기에 놓여 있다. - 154쪽, 마키아벨리, 인간의 시대를 열다 중]
[계몽이란 스스로 타자에게 이성적 숙고와 판단ㅇ르 대신 부탁하는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미성숙이란 타자의 안내 없이는 자기 자신이 이해한 것들을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음을 말한다. 만약 이런 미성숙의 원인이 이해의 결핍이 아니라 타자의 안내 없이는 그것을 사용할 해결책과 용기의 결핍에서 온것이라면 미성숙은 자기 책임이다. 그러므로 계몽의 모토는 다음과 같다. "과감히 현명해져라!(sapere aude!) 너 스스로 이해한 것을 사용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라!" - 159쪽 칸트의 "계몽은 무엇인가?" 발췌문]
[푸코가 다르게 생각할 때 다르게 행동할 수 있다고 했을 때, 그 의미는 튀는 생각을 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당연히 여기는 것이라 하여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말고, 언제나 비판적으로 사고하라는 의미였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당연히 여겨지는 것들의 무비판적 수용ㅇ르 거부하는 것이 푸코가 말하는 비판적 태도의 핵심인 것이다. - 174쪽, 칸트, 이성의 아침을 깨우다 중]
[우리 사회에서 니체 철학은 삶을 부정하는 허무주의라고 널리 알려져있다. (중략) 다만 오늘 우리의 삶이 허위로 가득찬 것이라고 말할 때 그 삶은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라는 것이 니체가 던진 철학적 질문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우리는 이렇게 물을 수 있다. 만약 오늘을 ㅇ려심히 산다고 해도 내일이 바뀌지 않는다면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니체의 대답은 진정한 삶은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이곳과 오늘에 있으니 우리가 처해 있는 거짓으로 가득 찬 현실을 긍정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자신만의 기준과 법칙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오늘을 살라는 것이다. (중략) 그는 차라투스트라를 통해 어떤 광기도, 어떤 가르침도, 어떤 신념에 대한 요구도 말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니체는 책을 읽은 이들에게 그에게서 멀어지고, 차라투스트라로부터 독자들 자신을 보호하라고 말한다. "오로지 당신이 나의 전부를 거부할 때에만, 내가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248-249, 세상을 사랑한 그들, 근대성의 비극을 예언하다 중]
[문화 산업을 좀더 쉽게 이해하기 위해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지적배경을 잠시 살펴보자. (중략) 이들은 이곳(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할리우드의 영화산업을 목격하게 되었고, 이 영화산업이 당시 노동자들이나 일반 시민들의 삶의 현실과는 엄청나게 동떨어진 물질적 세계의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있음을 보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는 일반 대중들은 영화가 그려내는 이미지를 자신의 현실로 착각하거나 동일시하는 현상을 보였다. 쉽게 말해 영화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산업이 잘못된 의식을 생산하는 한편, 고나료적 자본주의 사회는 문화산업과 결탁해 대중의 의식을 통제하고 조작하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이다. -275쪽, 철학자들, 시민의 도시를 다시 짓다 중
[결국 아렌트는 국가의 비이성화에 대한 책임이 국가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견제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대중으로서 시민들에게도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렌트는 이런 책임이 시민이라는 집단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 시민으로서 개개인에게 있다고 말한다.쉽게 말해, 누군가가 자신의 정치적 역할을 대신해줄 것이란 기대를 말아야하며, 참여를 통해 자신의정치적 역할을 다하라는 의미다. 아렌트는 다른 시민들을 설득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공통된 의견을 형성하는 가운데 서로 연대하고 결속하며 살아가는 일이 진정 성숙한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해야할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304쪽 철학자들, 시민의 도시를 다시 짓다 중]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라 소장할 수가 없어서 잊지 말아야할 부분을 접어두었다가 이렇게 블로그에 적어둔다.
나중에 민간사찰에서 이 글도 불순한 글 취급을 받게 될까? 동영상 '쥐코'처럼? 알 수없다. 블로그를 공개해두는 것이 슬슬 무서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