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희망이 필요한 때.

timid 2009. 4. 10. 00:38

 

어차피 내 블로그에 오는 사람도 없으니 검찰 소환을 받거나 수사를 받을 필요도없을 테지.

내 맘대로 내 생각을 적겠다. 이 만화를 보면서 든 여러가지 생각들을.

 

 어렵고 어지러운 말그대로 난세이다. 지금은. 정치판은 정말 형언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개판이다. 수구[守舊]인지 주구[走狗]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당과 대통령이 정계를 집어삼켰고 아직도 망칠일이 더 남아있는건지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집어다가 자기들 입맛에 맞게 간을 맞춰 집어삼켜대는 통에 우리나라의 자랑거리였던 국민손으로 일구어낸 민주주의는 도대체 몇십년 뒤로 후퇴하게 된건지 모르겠다. 마치 조선말 세도 정치 내지는 일당 전제화시대를 보고있는 기분이다. 자기들을 반대하는 소수파를 없앨 만한 계략은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그렇게 기발하게 터져나오는건지. 일단 다수 의석을 차지한 정당에게 법안 상정과 의결은 식은죽 먹기이고 반대파는 그때그때 필요한 타이밍에 맞춰 국민 여론을 몰아갈 사건을 터뜨려가며 차근차근 부수면 그만이다. 더이상 정치적 의미로서 우리나라는 대한민국이 아닌것같다. 대'한나라' 같다. 그들에게 그런 식의 정치는 쉬우면서 왜 국민을 위한 정치는 그렇게 어렵고 요원하기만 한건지 참 신기한 일이다. 지들 먹고 사 궁리할 머리로 국민들 걱정을 한다면 아마 우리나라는 전세계 제일 가는 선진국이 되어있을거다.

 

 정치와 경제가 무관하지 않듯 정치가 망해가면서 경제도 같이 망해가는 느낌이다. 신자유주의? 자유라는 말은 정말 멋진 말인데, 누가 그 앞뒤로 말을 붙인건지 정말 이상한 뜻이 되어버린 그 이념이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전반을 말아먹고 있다. 경제는 나아지긴 하는건지 물가는 계속 오르고 FTA 덕에 싼 가격의 수입상품을 구매할 순 있지만 그덕에 가격경쟁력에서 밀려난 우리 기업들에선 실업자를 토해내고 있다. 뭔가 이건 아닌거같다. 신자유주의에서 입에 침이 마르도록 말하는 그놈의 무한 경쟁. 무한경쟁을 통한 발전이라니. 지나가던 개가 웃을일이다. 출발선이 다른 이들간의 무한경쟁이 도대체 무슨 의미란 말인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서민들은 죽을때까지 서민이다. 아무리 병신같이 살아도 부자는 죽을때까지 부자이다. 아니 부자 중에서도 한번 부동산투자나 주식에 손을 잘못된 이들은 다시 부자로 살 수 없을만큼 밀려난다. 가난한 사람들은 늘어가고 부자는 줄어간다. 마치 중세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6,70년대 서민들의 희망이었던 개천에서 난 용들은 다 이제 승천해버렸고 더이상 개천에서 용이 승천할 수 없도록 교육에 대입해선 안되는 시장논리를 교육정책에 대입시켜 개천구멍을 꼭꼭 메워버렸다.

 

교육. 교육정책.. 나처럼 교육에 대한 생각을 다른 사회분야 측면에 대한 것보다 많이 해본 사람들은 아마 공감할거다. 답답하다. 윗대가리들이 생각하는 건 아이들을 위한 교육이 아니다. 미국이 이미 실패해서 갖다버린 구식 귀족주의 교육이다. 미국이 실패했다는 걸 몰라서 그들이 그 쓰레기같은 교육정책을 표방하는 건 아닐것이다. 지들 잇속 채우기에 바빠서 아이들이 행복해야할, 너무나 당연한 권리를 제대로 즉시할 수 없어서이다. 그 사실을 모르는 또는 알면서도 살아남고자 하는 학부모들은 꿈을 꾸고 키워나가야 할 아이들을 밤늦게까지 학원으로 몰아붙이고 오직 명문대, 명문대만을 외친다. 그래, 그런식으로 교육정책이 흘러가는대로 따라가면 그래서 아이들이 명문대에 들어간다손 치면 그 아이는 과연 행복할수있을까? 성적공개가 된 학교중에서도 우수한 학생들이 많다는 초등학교를 거쳐 국제중, 외국어고를 나와 명문대를 졸업하고 나서,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고 치자. 학부모들이 그렇게 돈다발을 쏟아부어 부모의 뜻대로 잘 자라난 아이들이 이제 부모를 부양할것같은가? 어림없는 소리. 그들의 부모가 했던 방식을 그대로 쫓아 제 자식들 키우기에 혈안이 될 것이다. 행복이란 걸 찾을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같은 요지경속에서 도대체 그들이 추구하는 건 뭐였단 말인가? 그렇게 사는 것이 주는 가치는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문화 역시 마찬가지다.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가장 정확한 반증은 문화분야에서 드러난다. 끊임없이 피상적이고 비본질적인 것을 쫓아가는 얄팍한 저질문화. 포스트 모더니즘은 본질에 대한 회의로 시작한 것이기 때문에 본질은 어디에도 있을 수 있으며 어디에도 없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성형으로 완벽해진 아가씨의 착한 몸매에도 고매한 학자의 품성속에도 본질은 있을수도 있고 없을수도 있다. 본질은 더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끊임없이 외형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며 누가 만든건지도 모르는 유행을 쫓아 외형을 끊임없이 바꾸어나가면서 자기들의 존재의미를 찾으려는 요즘 사람들을 보면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무서운건 이러한 문화가 아까 앞에서 언급한 정치판 수구의 주구들에게 이용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민들에게 반짝반짝 휘황찬란한 문화로 그들을 현혹시키고 그 이면에 자기들의 추악한 아귀다툼을 감추는 그들의 속내는 정말 무섭다. 나 역시 그들의 얄팍한 속임수에 놀아나고 있다는 것도 무섭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주저앉아선 안된다.

 

희망의 불을 키는 걸 포기해선 안된다. 우리가 갖고 있는건 지오디 가사처럼 성냥하나와 작은 양초 한개에 불과할지도 모르고, 지금 이곳은 바람이 불고 비가 내려서 도저히 불을 밝힐 수 없는 곳이라고 해도, 모두가 손가락질 하며 포기하라고 아무 소용없다고 비웃는다고 해도 멈추어선 안된다. 이 어지럽고 더러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마음속에 한줄기 희망까지 포기해선 안된다. 희망의 포기는 곧 내가 살고있는 이세상의 몰락과도 같은것이니까. 세상은 내가 생각한대로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럴리가 없는게 난 이 세상속에 너무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사를 봐도 알수있는것처럼 그런 절망으로 캄캄했던 시절도 결국은 극복되었고 그것은 항상 우리처럼 평범하고 별볼일 없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희망을 놓지 말자. 촛불을 밝히는 걸 포기해선 안된다. 희망을 갖고 기다리고 인내하고 행동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