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알았지만 아무도 몰랐던, 그녀의 이야기 - 김별아 소설 [논개]
얼마나 오랜만에 감상평을 쓰게 된건지. 그동안 내가 내 문화생활에 너무 인색해있었기도 했고, 이런저런 일들에 책 한권 영화 한편 제대로 볼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기도 했다. 그리고 책을 읽고나서도 긴 생각을 하면서 감상평을 쓸 여유따위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았다.
간만에 도서관 연체도 풀리고, 과제가 줄어들었던 때에 이 소설을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었다. 책표지가 예뻐서, 김별아라는 작가를 언뜻 들어본 적이 있어서 도서관을 다니면서도 점찍어둔 책이기는 했지만 나를 이렇게까지 빨아들일만한 매력을 지닌 소설인지는 몰랐다.
논개는 임진왜란 때 적장을 품에 안고 죽은 의랑(義娘), 내지는 의기(義妓)로 알려져있다. 그런데 한때는 끌어안고 죽은 왜적장의 애첩이라는 같잖은 칭호를 달고 일본의 어느 신사에 모셔진 적도 있고, 한 친일화가에 의해 그려진 그녀의 초상이 우리나라 그녀가 실존 인물인지 여부에 대한 논란 역시 끝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소설 속 논개는 다수의 사람들이 알고있었던, 또는 오해하고 있었던 시각을 불식한 채 한 가지 흐름에 충실했다. 소설 속의 논개는 우리가 아는 논개와 비슷하기도 한 동시에 많이 달랐다. 정의롭고 현명했으며, '사랑'이라는 가장 보편적이고 특별한 감정에 온전히 기대어 살아간 평범하지만 비범한 여인이었다. 그녀가 사랑을 말하는 방식은 보통의 기생들처럼 요란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사랑을 처음 해보는 사람인 것처럼 촌스럽고 어색하지도 않았다.
그녀의 사랑은, 주논개라는 그녀의 이름의 분신과 같았고, 또한 그녀가 사랑하는 최경회와 가장 닮아있었다. 최경회는 그가 살아온 방식 그대로 그녀를 사랑했다. 좀 유치하지만 도식을 써보면
'논개=논개의사랑=최경회의 사랑=최경회' 이런식이다.
그녀와 그의 사랑은 서로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렇기에 함께 있음으로 온전한 하나를 이루었던 것 같다. 그들은 따스한 애정표현이나 강한 포옹보다는 망설였다는 듯이 오래 감추어두었던 안부인사를 묻는 것으로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와 사랑을 확인했다.
그녀는 그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가 아끼는 사람들까지도 기꺼이 살뜰히 살폈다. 단순히 남녀간의 뜨거운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 묵묵하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연정을 다른 사람에 대한 호의와 온정으로 이어나갔다. 그것이 그를 위한 것임을 잘 알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행동 하나 하나에서 그를 본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에 그녀는 그를 사랑할 수록, 그를 위해 다른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를 위한 길이 곧 그녀 자신을 위한 길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운명처럼 그를 위해 살살고 그를 위해 죽는 것을 한번도 망설인 적 없었다. 그를 위해서라면, 그의 부인을 내 어머니인것처럼 정성껏 간호할 수 있었고, 긴긴 세월동안 얼굴 한번 보지 못한다 해도 눈물 흘리지 않고 그를 보낼 수 있었고, 아귀지옥같은 사지(死地)라도 달려가 따뜻하게 손을 잡아줄 수 있었고, 끝이 보이는 이별 앞에서도 웃을 수 있었고, 죽는 것 보다 견디기 힘든 그의 부재 속에서도 '부디 살아남아달라'는 마지막 부탁을 지킬 수 있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살았던 그 짧은 삶의 끝에 선 그녀는 마지막 남은 그녀의 사랑을 위해서,
구차한 목숨을 잇는 것보다 영원히 그와 함께 하기 위해서
누군가에게 받을 손가락질을 감수하며 양반이라는 신분을 버리고 기적에 이름을 올렸고
그의 목숨을 앗아간 적장을 끌어안고, 사랑했던 그가 목숨을 잃었던 남강으로 망설임없이 뛰어들 수 있었다.
그녀는 의리와 정절의 화신이라기보다는
사랑, 그 지고지순한 감정의 결정체라고 정의하고 싶다.
그들은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도 서로 입밖에 내어본적 없었지만, 달콤한 정분을 쌓은 날보다 눈가에 치민 눈물과, 목끝까지 차오른 눈물을 겨우 삭여가며 서로를 그리워했던 날이 더 많지만. 이세상 누구보다 서로를 사랑했고 그들의 감정은 내가 아는 사랑, 그 이상의 것이었다. 나는 그동안 사랑을 몰랐다. 논개를 통해 바라본 사랑이란 것은 정말 이런 것이었고, 이래야만 했다.
역사를 토대로 한 소설이라 그런지, 이 이야기가 그저 소설일 뿐인데도 난 자꾸 논개가 그랬을 것만 같다. 임진년 김시민의 진주성 전투 이후 일본군의 진주성에 대한 복수심은 그들이 지니고 다니는 칼마냥 날이 서있었기에, 진주는 살아서 들어갔다 해도 죽어서 나올수밖에 없는-시체조차 온전하게 나오기 힘든 사지였다. 그곳에서 다시 일본군을 맞이한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 사지에서 논개는 자신의 사랑을 온전히 꽃피웠고 단 한 사람을 향한 사랑으로 허다한 슬픔과 절망의 무리를 위로했다. 결국 파멸이 너무도 뻔하게 보이는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녀의 사랑은 생애 마지막 날, 남강에 퍼졌던 물거품처럼 크고 아름답게 번져나갔다. 그녀의 삶이 이내 시대의 물결에 흩어져버릴 거품이었을지라도 이 소설을 통해 내 앞에 살아난 논개는 아마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여운이 길다.
작가는 당시 조선 사회를 깊이있는 시선으로 바라보았고 그 문체 또한 (역사적 사실을 논하는 것임에도)문학성 본연의 것을 놓치지 않았다. 사랑을 말할 때는 우아하고 아늑했으며 당시의 시대를 말할 때는 시대를 바라보는 작가의 처연한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책, 소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