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우정의 이름으로- 섹스 앤 더 시티
이 영화는 잘 알려진 드라마를 영화로 각색한 작품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무려 장장 10년에 걸쳐 여섯개의 시즌으로 시청자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았던 드라마의 뒷이야기이다. 에필로그쯤 되려나? 난 드라마를 보지는 못했지만 그런 관객들을 위해 짧은 설명이 덧붙여져 시작된다. 업무에 바쁜 미란다는 현재 남편을 만나 브룩클린에서 아이를 낳고 살고있으며, 욕정 넘치는 사만다는 유방암 치료를 받을 때 자신의 곁을 지켜주었던 미남 유명배우를 만나 헐리우드에서 그를 뒷바라지 하며 살고 있고, 진짜 천생연분을 기다리던 샬롯은 몇번의 결혼 실패 끝에 착하고 성실한 유태인 남편을 만나 깜찍한 중국아이를 입양하여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산단다. 그리고 마지막 캐리는(그녀는 마치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보이는데, 실은 이 네 여자 모두가 주인공이라고 한다. 영화가 포커스를 좀더 골고루 잡아주었으면 좋았을 뻔 했겠지만, 만약 그랬다면 자칫 스토리가 너무 정신없어보였을 수도 있었겠다.) 10년동안 사귀어온 잘나가는 경제인 빅과 알콩달콩 싸우고 화해하고를 반복하며 애정전선을 이어가고 있었다. 짧게 정의내리자면 이 영화는 이 여자들이 자기 자신, 또는 그들의 사랑을 어떻게 찾아가는지에 대한 재밌는 이야기 정도쯤 된다.
영화에서 부각되는 것은 캐리의 눈부신 패션센스-이를 뒷받침하는 호화스러운 명품들과, 네 사람의 20년 묵은 진한 우정이다. 누가 남자들의 우정만 진짜라고 했는가? 그들은 힘들고 즐거운 순간에 늘 함께하면서 끊임없이 수다를 떤다. '수다'라는 말이 다소 경박해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은 그 수다를 통해 서로의 인생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또 위로하기도 하면서 자신 고유의 인생을 더 풍부하게 설계해나간다. 이 영화는 네사람 모두의 이야기인 동시에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이야기이도 하다. 이야기가 이렇게 하나로 모아졌다가 갈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시청자들 또는 관객들의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서 느낀 거지만, 네 사람의 각각의 특징을 다 혼합해놓으면 그것은 한 사람의 여자로서 갖고있는 characteristic 전부를 이룬다. 네 사람의 사랑 역시도 다 그 모양이 제각각이다. 영화감상 내내 네 사람을 자세히 뜯어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캐리는 거의 매일 명품 구두와 아름다운 옷을 사들인다. 그녀의 옷방은 짐으로 꾸리면 서른 여덟개의 박스가 나올정도로 넘쳐난다. 여자의 소유욕과 과시욕을 동시에 보여주는 캐릭터이다. 그러면서도 사랑에 있어서는 상당히 이성적이고 어른스럽다. 빅과의 나이차가 상당하지만 그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의 아픔을 위로한다. 둘은 티격태격 징그럽게 싸우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사랑임을 서로는 예전부터 이미 알고있었다.
사만다는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욕정덩어리'다. 좀 속된 표현이긴 하지만 사실이다. 스미스와의 LA생활이 정착되기 전까지 그녀의 연애시대는 이세상 어느 난봉꾼못지 않은 질펀하고 파란만장한 여정을 겪어왔다. 그녀는 여자가 가질 수 있는 성욕을 적나라하게 그려낸 캐릭터이다. 그녀는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육체적인 사랑을 나눌 때 느끼는 즐거움이 그녀의 반세기 인생을 점철해왔기에 평범한 조강지처로서의 삶은 그녀를 만족시킬 수 없었다. 그렇기에 스미스와보다 자기 자신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두 사람의 생활은 평범한 여자들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어보이지만 무엇보다 그들은 솔직하고, 그 솔직함은 내가 숨겨왔던 과시욕과 성욕에 대한 당당함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들이 우리의 자화상임을 인정한다. 이에 대비적으로 미란다와 샬롯의 생활은 평범한 여성들과 무척 닮아있다.
미란다는 능력있고 그만큼 바쁜 변호사다. 그녀는 대도시 여성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맞벌이 주부로서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눈 뜨면 바로 일을 향해 전진해나가고 집에 들어오면 일에 지쳐 잠이 든다. 그에게 사랑은 결혼 전에는 그녀의 바쁜 생활을 위로하는 설레임 가득 활력소였을지 몰라도, 결혼 후에 (귀엽지만 가끔 성가신) 아이까지 생긴 이후로는 사랑은 사치라고 느껴졌나 보다. 하지만 남편 스티브는 전천후 변함없이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의 사랑을 원했다. 결혼 후 너무나 다른 두사람의 마음이 균열을 일으킨 건 당연하다. 미란다가 스티브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했다가 회복해나가는 과정은 매우 느렸지만 공감이 많이 갔다. 미란다가 바쁜 일상에 쫓겨 살고 아이 양육문제에 골머리를 썩을 때에도 언제나 그녀의 마음 한켠에는 스티브에 대한 사랑이 아직도 자리하고 있음을 깨달았을 때, 두 사람의 마음이 같다는 걸 알았을 때 그들의 모습은 지켜보는 것만으로 기뻤다. 우리나라 엄마들한테 미란다의 이야기만 보여줘도 엄마 아빠들이 훨씬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영화속에는 샬롯의 이야기가 그리 비중있게 다루어지지 않은 점이 아쉽지만 샬롯은 누구나 사랑할만한 귀여움과 소녀스러움을 간직한 전업주부이다. 남편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입양한 딸은 너무나 사랑스럽게 잘 커주고 있다. 게다가 그렇게 꿈에도 그려오던 임신까지 성공하다니. 영화속에서 그려진 샬롯의 인생은 아름답고 평탄하기만 하다. 어쩌면 그녀는 모든 여성들이 바라는 결혼생활의 이상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로 여자가 가질 수 있는 능력과 명성, 욕심, 고민, 매력 등을 모두 맛있게 버무려냈다.
그리도 또 한가지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면서 주목해봐야할 사람이 하나 더 있는데, 바로 캐리의 비서 루이스이다. 이 영화는 40대 중반(우리 나라에 접목시키자면 30대 중후반쯤 되는) 골드미스 또는 주부들의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있는데 루이스의 캐릭터는 사랑과 성공에 대해 아직 부푼 꿈을 꾸고 있는 20대 여성의 전형이다. 그녀는 그렇게 예쁘진 않지만 볼수록 매력있고 하는 행동마다 똑 부러지는 데다가 심성도 곱다. 이렇게 마음에 쏙드는 비서를 만난 캐리도 참 행운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사랑의 단꿈을 꾸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빅과의 아픈 기억으로 힘들어하는 캐리는 다시 사랑을 꿈꾸게 된다.
사랑하기 위해 (to fall in love) 세인트 루이스에서 멀리 뉴욕까지 날아온 루이스. 그녀가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을 천천히 지켜보며 캐리는 빅과의 화해를 조금 더 현명하게 할 수 있었다. 어쩌면 루이스는 캐리뿐만 아니라 지금 사랑에 실패했다거나 아직 사랑을 시작하지 않은 여성들을 위한 따뜻한 지침서가 아니가 싶었다. 영화 마지막에 울려퍼지던 비욘세의 'you must find love'가 마음에 쟁쟁히 울릴 때 이영화는 단순히 네 여자의 우정과 인생만이 아닌 사랑 이야기를 하고싶었던 게 아닌가 생각해보았다. 여자의, 여자에 의한, 여자를 위한 영화이자, 남자들은 보면서 여자를 이해할 수 있게되는 영화, [섹스 앤 더 시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