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을 원하는 당신에게.
하얀 거탑에서 주목할 만한 부분 중 하나가
서로 너무나 다른 두 사람- 장준혁과 최도영의 우정입니다.
최도영이 의사로서의 현실과 이상에 부딪혀 괴로워할 때 장준혁은 되려 그를 다그칩니다.
기적이 아니라 너 스스로를 믿으라고, 그 환자가 나을거란 헛된 기적은 바라지 말라고.
정곡을 찌르는 친구의 직언에 최도영은 버럭 화를 냈지만, 집에 돌아오는 길 몇 발치 장준혁과 멀어져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준혁아."
"왜."
"넌 존재만으로 충분해."
소통? 좋은 말이지요, 저도 좋아하느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진정한 소통은 시끄럽게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침묵 역시 소통수단의 하나라고 생각해본 적 없나요?
슬픔을 나누면 반이 된다지요, 하지만 반으로 나누기에도 너무나 큰 고통을 겪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그것을 나누려 들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고싶지 않아서인 동시에 고통을 겪으며 망가져가는 나 스스로를 보이기 싫어서이기도 하지요.
저는 고통받는 사람의 주변에도 있어봤고, 고통을 겪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주변 사람 입장에선 미칠 노릇입니다. 소중한 사람이 자기 혼자 끙끙거리고 아파하면, 도와주고싶은데 어떻게 해줘야할지도 모르겠고, 그렇다고 그냥 냅둘수도 없고. 차라리 왜 이그렇게 힘들게 하는지 탁 터놓고 말해주기라도 했음 싶지요.
그런데 힘든 사람 입장이 되고보니 주위사람들의 관심- 깊지도 않게 성가신 관심이라면 아예 없었으면 싶더군요. 깊이있게 관심을 가져주긴 어렵겠지요, 당연히- 내가 말하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마냥 슬그머니 다가와 찔러나 볼 바엔 그냥 내버려두길 바라게 되더군요. 하지만 방치는 단연코 상처를 치료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방치와 침묵은 달라요. 방치는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거에요. 니 하고싶은 대로 해라, 니가 알아서 하겠지. 그런 마음을 상대에게 무관심하게 만들고, 소통을 단절하게 만들죠.
침묵은 해야할 말, 하고싶은 말은 있지만 묵언으로 대신하는 거에요. 그냥 잠자코 지켜봐주고 기다려주는 것 말이에요. 아무말을 않는다고 해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게 아니라, 침묵으로 곁에 내가 있음을 증명해주면 되는 거죠. 무슨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니가 무슨일이 있든 널 이해하고 도와줄 마음이 내겐 있다. 니 옆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말을 굳이 하지 않더라도 느끼게 해줄 수 잇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냥 별 이유 없이 전화해서 수다떨기, 밥먹기, 함께 영화보러가기, 따뜻하게 손잡아주기, 마주보고 웃기.
이것말고도 생각할 수 있는 건 얼마든지 있겠지요.
문제는 그 문제와 직면한 사람 혼자서 해결해야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하지만 혼자있다고 느낄 때 만큼이나 사람이 무력감을 느낄 때가 또 있을까요? 혼자 가는 길, 그길에서 힘들고 지쳐 뒤돌아봤을 때 언제든 당신이 있을거라는 느낌을 주세요. 어떤 도움보다도 그사람은 당신의 그 존재감에 감사할겁니다.
힘든 사람에게선 힘든 느낌이 풍겨납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지요.
그건 힘들어 하는 사람은 두가지 심리가 동시에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자기가 겪는 이 고통을 감추고 아무일 없었던듯 살고싶은 마음과, 누군가 알아주고 도와주길 바라는 마음 말입니다.
그때 그 느낌을 무시하지도, 너무 심각하게 관여하지도 마세요.
그저 진심을 가지고 침묵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