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상속에 존재하는 소녀들 - 소녀시대
우윳빛 뽀오얀 피부
긴생머리 내지는 찰랑찰랑 단발머리
움직일 때 마다 샤방샤방 비누향기
세상물정 모를듯 까맣게 빛나는 두 눈망울
욕이라곤 입에 담지 못할거같은 도톰한 분홍빛 입술
불면 훅 날아갈 듯 가녀린 몸매
순정만화를 보며 남중남고를 나온 순진한 남학생들이 꿈꿔왔던 여고생의 모습,
그 환상이 소녀시대를 만들었을 것이다.
왕년 핑클, ses가 울고갈 깜찍한 노래들만 골라 부르며
난 니꺼야, 사랑해, 꺄앙 난 몰라, 온갖 아양을 떠는 아홉명의 아름다운 소녀들.
처음엔 떼거지로 나와 저게 뭐하는 짓인가 혀를 끌끌찼는데
역시 아이돌 팩토리 sm은 뭔가 달라도 다르다.
이전에도 떼거리로 나온 아이돌 그룹은 많았다.
내가 어릴 적에 핑클, ses, 베이비복스 등 각종 여자아이돌이 각축을 벌일때
일곱명의 한중일 세 나라 아이들로 만들어진 써클이라는 그룹도 그랬고
열세명(무려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 쌍둥이가 껴서 열셋)으로 이루어진 i-13도 그랬다.
이들 모두 앨범 한 장 내고 두세 달쯤 지지부진한 활동을 벌이다 꾸물꾸물 자취를 감춰버렸다.
하지만 이런 그룹들이 자멸할 수 밖에 없었던건
모든 멤버를 아우를 수 있는 통합적인 이미지도 없을뿐더러
그렇다고 한 멤버가 유달리 튈만큼 예쁘거나 재치가 있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랬다고 쳐도 그들의 소속사가
sm만큼 물량공세를 쏟아부으며 대중들에게 아이돌을 알릴만큼 브랜드파워가 크지 않았던 것도 이유긴하겠지만
sm이 '쟤네가 과연 뜰까?' 싶었던 수많은 아이돌들을 띄운 건 단순한 물량공세가 아니었을것이다.
바로 이미지 메이킹! 각 멤버마다 대중에게 친근히 또는 독특하게 어필하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HOT를 예로 들자면
문희준은 리더쉽도 있고 춤도 잘 추고 작곡도 제법 잘 해낼 뿐더러
(사실 이런 내재적인 능력은 팬들 이외엔 잘 모르는 사실이기 때문에)
그를 돋보이게 하는 유난히 튀는 원색적인 염색머리와 헤어스타일로 독특한 10대들의 아이콘으로 자리했고
장우혁은 (아이돌 시절만큼은)브룩클린 브릿지에서
브레이크댄스를 혼자 무던히 연습하는 과묵한 댄서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가끔 씩 웃어주면 소녀떼들 여럿 쓰러뜨릴 듯한 데미지를 갖고 있는 이였고.
랩인지 악인지 모를 것을 노래 중간중간에 쏟아낼 때면 카리스마로 관중을 압도했다.
토니안은 귀여운 외모로 나이는 비록 장우혁, 문희준과 동갑이었지만 멤버 속 귀염둥이 이미지를 굳혔고
강타는 말할 필요 없는 가창력을 가진 리드보컬에 잘생기기 까지 해서 별다른 이미지를 구축하지 않아도 소녀들이 따를만한 왕자님의 모습을- 아이돌 스타로서 갖출 수 있는 가장 멋진 이미지를 갖고있었다.
이재원은 딱히 이미지가 정해져있다기 보다는 장우혁과 혼동될 만한 멤버였다.(팬들에게 돌맞을 말이지만 사실이 그랬다. 팬이 아닌 사람들이 봤을 때 이재원의 존재감은 한없이 가벼웠다.) 이때보다 소속사에서 한층 이미지에 신경을 써서 내놓은 그룹이 신화였고, 뒤이어 보아와 동방신기, 천상지희를 내리 히트시켰다. 이들을 국내에서도 성공시켰을 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실험끝에 일본시장에서까지 성공을 거두는 쾌거를 거뒀다. 물론 중간에 시행착오를 많이 겪긴했지만(블랙비트, 밀크 등의 그룹은 그들이 출중한 실력을 갖고있었음에도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함으로서 퇴보의 길을 걸었다. 뿐만아니라 포스트 보아라 할 수 있는 다나를 내놓았으나 크게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랜 노력 끝에 그들은 아이돌 팩토리로서의 지존 자리를 굳건히했고, 아이돌 멤버들은 예전처럼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그룹으로서의 존재를 부각하기보다 시대의 빠른 변화에 발맞추어가며 각자 노래를 하고 또는 연기를 하고, 버라이어티에 참여하면서 자신들의 존재영역을, 나아가 sm 아이돌팩토리의 지평을 넓혀나갔다. 차기 아이돌 세대로 주목받고있는 수퍼주니어와 소녀시대는 그들이 이시대에 가장 잘나가는 연예기획사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아닌가 싶다. 소녀시대는 소년들이, 아니면 한때 소년이었던 남성들이 꿈꿨던 소녀의 이미지를 그대로 재현해냄으로서 남성팬들의 굳건한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고, 아이돌 가수라기 보단 아이돌 엔터테이너라는 명칭이 더 잘 어울리는 그들은 드라마에 시트콤에 가요프로그램에 버라이어티에 동분서주하면서 '소녀시대'라는 그룹의 네임밸류를 고양시켰을 뿐 아니라 각자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역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HOT에서 소녀시대까지의 진화기간이 짧았던 것처럼, 점점더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빠르게 변화할것이고 거기에 발맞추어 어떻게 행보를 이어갈지는 아직 확실히 정해진것도 없고 가닥도 잡기 힘들다. 난 딱히 그들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계속해서 진화해가는, 그래서 '소녀의 시대'를 이어가는 소녀시대가 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