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내 기억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랑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채 떠날수있게 해준 당신께 고맙단 말을 남깁니다..
한 남자가 참 답답하고 느린 사랑을 하고있었습니다. 어린 연인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게, 천천히 조심스러운 사랑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사랑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쫓겨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랑은 그의 사진관안의 사진들처럼 늘 그자리에서 머물며 빛납니다. 그의 연인이 그를, 그와 사랑했던 기억을 모두 잊는다해도 그의 사랑은 사진처럼 처음부터 그러했듯이 조붓하게 남아있을 것입니다. 만약 조금만 더 사랑할 시간이 있었다면, 그는 아쉬워하면서 그 아쉬움마저도 사랑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또 다시 아쉬움이 낳은 감정 한 오라기 한 오라기가 모여 또 다시 사랑이 될 것이고, 그렇게 그의 사랑은 이어져나갈 것을 이제 압니다.
참 어렸을 때 봤지만 감동이란 것은 나이나 영화를 보는 수준차이를 불문하고 찾아온다. 한석규는 어쩜 그렇게 예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은은한 사람인지 모르겠다. 그가 갖고 있는 연기 역량은 다양하지만 그 역량의 총체는 결국 어쩔 수없이 뿜어져나오는 그의 따스한 매력이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정원'은 어쩌면 애초에 감독이 이미 그를 점찍어두고 만든 캐릭터가 아닌가 싶다. 웃고 있는 푸근한 얼굴로 가려진 깊은 슬픔,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한단 말조차 미안하고, 사랑했단 사실자체에 감사해하는 시한부 인생의 마지막 나날들이 한석규라는 배우를 통해 담담하게 그리고 따뜻하게 그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