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과 인현왕후, 그 숙명의 대립 - 3
[부제 : 역사가 이덕일의 '사도세자의 고백'을 읽고 나서] - 上
사랑. 사랑이 어디서나 흔히 그런 것처럼 사랑으로만 피고졌다면 차라리 나았을지도 몰라.
희빈의 아들이자 훗날 20대 임금으로 등극하는 경종도, 그리고 그 이후 등극하게되는 21대 임금 영조마저도 두 여자, 나아가서는 두 당파의 지독한 악연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왕권과 사직을 보존하기 위해 두 당의 극단적인 경쟁[환국]을 조장했던, 아버지 숙종. 그의 두 아들은 아비의 업보를 그대로 질 수 밖에 없는 필연을 타고 태어났는지도 모른다.
경종은 그의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갔던 서인 중에서도 좌파적 성향이 강하던 노론과 척을 질 수 밖에 없었고,- 희빈 일가의 몰락은 곧 남인의 몰락을 가져왔다. 이후 정조 등극 시기까지 남인들은 정계의 아웃사이더로 남았다.- 반면 온건한 성향의 소론과 손을 잡게 되었다. 경종의 치세기간은 겨우 4년이었다. 하지만 그 4년의 세월동안 노론과 소론은 한번씩 주도권을 바꿔잡으면서 그만큼 엄청난 희생을 감수해야했다. 경종은 지방 산림에까지 깊이 뿌리내린 노론을 두려워하면서도 경멸하고 있었다. 노론 역시 경종이 쥐고있는 왕권을 두려워했으면서도 연잉군[훗날의 영조]이라는 와일드 카드를 믿고 있었다. 그들은 경종 즉위 초부터 연잉군의 왕세제 책봉건을 강하게 추진했었고 [정설화되지 않은 가언적인 학설이긴 하지만]경종을 해하면서까지 연잉군을 왕으로 등극시키려 했었다.
그렇게 4년동안 노론과 소론 사이의 치열한 대립구도는 영조의 등극으로 노론의 승리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영조는 똑똑한 군주였다. 조선은 군주의 국가이자, 백성의 국가여야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있었고 그가 경종을 독살하고 왕위를 차지했다고 믿는 소론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용기를 갖고있었다. 비록 왕앞에서만의 화해이긴했지만 두 당은 강력한 왕권으로 전개되는 탕평책에 합의했다. 평화로운 듯 했다. 영조는 진심으로 백성을 아끼고 왕권을 지킬 줄 아는 현명한 임금이었고 태평성대였다.
그렇게 영조가 평생을 완벽한 군주로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그가 태어남과 동시에 필연적으로 지고 살아야했던 깊은 트라우마는 그의 평생을 지배했다. 그것은 한편으로 그에게 만족되지 않는 야망을 움켜쥐게 하여 왕위에까지 이끌었고, 한편으로 마흔이 되어 얻은 소중하고 사랑스러웠던 아들과의 관계 마저 조선 역사상 두 번 다시 없는 부자간의 대립으로까지 치닫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