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의부스러기

비열한 거리.

timid 2006. 7. 5. 22:29


드디어 봤다. 럭키 넘버 슬레븐 대신 본 영화, 모르겠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안했다.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제발 그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나도 모르게 불안해했던 것 같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걸 보면서도 '잔인했다고, 조폭영화는 다신 안볼거라'고 혀를 내두르는 진영이 앞에서 나는 한동안 한 마디도 못 했다. 하도 여러가지 생각이 많이 나서, 제멋대로 엉겨붙은 그 생각들은 도무지 정리될 것 같지도 않다. 비열하다는 말, 솔직히 정확한 의미에 대해 잘 몰랐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앞에서 제대로 대들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까는 사람보고 비열하다고 하기도 했고, 요리조리 미꾸라지 처럼 요행만 쫓아 도망다니다가 그 요행으로 성공한 사람을 비열하다고 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면서 [비열하다]라는 형용사의 제대로 된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완전히 착할 수도, 완전히 악할 수도 없어', 비열해서 슬픈 우리의 초상.

요즘 들어 그런 생각을 하며 살아서 그런건지, 병두는 비열한 나의 조금은 극단적인 모습을 비춰주는 듯 했다. 언제부터,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여튼 병두는 스물 아홉 나이에 로타리파 둘째 형님, 말 좋으라고 형님 소리는 듣고 살지만 떼먹은 돈 받아먹고 사는 삼류 건달이다. 다만 그 뿐이다. 그도 삼류 건달이라는 딱지만 남들과 다를 뿐, 제 가족들 부족함 없이 호구하는 것이 우선이고, 첫사랑이었던 현주와의 만남에 설레이고, 거느리고 있는 동료-병두는 멋진 전문용어'식구[食口]'라고 표현했지만-들과 그때 그때 나눠먹을 만큼만 안락하길 바라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적절하게 선과 악의 두 축에서 균형을 유지해가며 살아오던 병두의 삶을 욕심이라는 것이 한순간에 천국과 지옥의 극한으로 몰아넣었다. 스크린 안은 선악의 구분 조차 모호하고 다소 심각한 인생의 마지막- 죽음조차도 예상할 수 없이 다가오며 그것이 과연 단죄인지 무고인지조차 알 수 없다. 다만 끊임없는 생존을 위한 싸움만이 분명할 뿐이다. 아, 그만큼 분명한 것 한가지, 그 싸움은 끝나지 않을 거란 사실.

 

영화 전반에 대단한 열정을 쏟아부은 조인성의 연기는 말할 것 없이 좋았지만, 난 자꾸 마지막 장면 즈음 가서 남궁민의 표정이 인상에 남는다. 승자들만의 자리 속에, 승자의 자리에 앉아서 모든것에 신물이 난 듯한 지겨운 표정. 불안한 승리, 그 비열함이란 것은. 

 

 

당신이 비열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것들은 대체 무엇이었나?

그런 당신은 그 '비열한' 것들 앞에 얼마나 당당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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