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와 아빠. 그리고 형.
빌리의 아빠는 빌리에게 정말 엄하고 무서우신 분이다. 그 분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빌리가 여기서 비뚤어져나가면 어떤 길을 걷게 될지, 또 이 구질구질하고 재미없는 탄광촌에서
살다보면 어떤 아이로 자라나게 될지도 그 분은 잘 알고 계셨다.
[우리는 이미 끝났지만 빌리는 아니야, 빌리를 이렇게 끝나게 할순없어!]
빌리가 강해지는 것 보다, 빌리가 하고싶은 것, 잘 하는 것이 먼저라는 것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아들의 꿈을 위해서 배신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수치를 감내할 수 있으셨고 소중한 아내와의 기억이 담긴 결혼 패물마저도 전당포에 아낌없이 맡기실 수 있으셨다.
[힘들면 돌아가도 되요?]
[농담하니? 네 방 세놨다.]
으하하하하하 이 장면을 보고 얼마나 웃었는지. 막 눈물을 흘리면서 마구 웃었다.
빌리는 쉽사리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아빠는 돌아올 자리를 언제든 남겨주실 테지만 그 자리를 위해 또 다시 흘릴 아버지의 땀과 눈물을 알 만큼 빌리의 마음은 이미 커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멋진 사람은 또 있다. 바로 빌리의 형 토니 엘리엇이다
.
[형, 죽는다는 게 뭘까?]
빌리가 엄마 묘지에 다녀와서는 침대에 누워 형에게 그렇게 물었다.
[꺼져(Fuck up)]
형은 그렇다. 빌리같은 어린 시절이 있었지만 꿈같은 건 있었던 듯 했지만 어느샌가 그 자리엔 탄처럼 어두컴컴한 현실이 자리해 있었다. 분명한 건 이런 삶이 행복하지만은 않다는 것이고, 이런 삶을 빌리에게도 안겨줘선 안된다는 것. 아버지보다는 덜하지만 빌리만큼은 더 현실을 알고 그만큼 현실에 찌들어버린 형이지만 마음은 누구못지않게 깊고 따뜻하다. 왕립발레단으로 가는 버스에 탄 빌리를 보며 장난을 하다가 그를 빤히 바라보는 빌리를 보며 방음 유리창 너머로 그렇게 외친다.
[보고싶을거야]
빌리는 들을 수 없다. 형이 무슨 말을 해줫으면 했는데, 유리창 너머의 형의 말은 들리질 않는다.
[뭐라고? 안들려!!]
[널 보고싶을거야(i'll miss you!)!!]
들리지 않아도 빌리는 알겠지? 누구보다 동생을 아끼는 형의 따뜻한 마음. 나는 또 한번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