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끄적끄적

timid 2006. 1. 1. 15:35

 

 불멸의 이순신. KBS에서도 놀랄만한 천문학적 액수의 제작비.

104회라는 고되고 야심찬 장정. 그리고 갚진 결과.

물론 104회 중 어느 한 회도 거의 놓치지 않고 봐온 나나 다른 시청자들 눈에 보였던 허점이 없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드라마의 시도가 매우 도전적이었고 작품을 전체적으로 봤을 때 견고한 전투씬, 섬세한 내면연기서부터 짠한 휴머니즘까지. 하나의 잘 만든 협주곡을 감상하고 나온 기분이다. 디테일에 관한 실수는 애교로 봐주자.

 오래 생각해보니까 어쩌면 김명민이 아니었어도 이순신 역을 맡은 그 누군가는 이미 대상자리를 따놓은 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라. 막대한 제작비로 KBS는 한 해 예산의 몸통을 통째로 날렸고 부득불 더빙 외화를 수입해야 할 정도였다. 이런 상이라도 하나 물려주지 않는다면ㅡ연기대상이 말이 [연기]대상이지 스탭과 작가, 감독 모두에게 주는 상임을 감안할 때ㅡ 방송사 측 체면은 말이 아니었을 것은 너무도 당연하니까. 비식 새나오는 비웃음.

 하지만 분명한 건 김명민이 그려낸 이순신은 다른 누가 그려낸 것과 다른 유일무이한 그만의 것인 동시에 영웅을 주인공으로 한 사극 장르에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 약 10년 전 연예계에 입문한 이후 이렇다할 명성도 연기실적도 없던 그에게 이순신 역은 어쩌면 너무 버거운 것일 수 있었다.

 주위에선 미스캐스팅이다 뭐다 말이 많았고, 시작부터 우리가 봐온 위인전과는 다른 이야기를 꺼내는 사극에 몇몇 시창자들은 혀를 내두르고 고갤 돌려 외면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 있으면서도 그는 정말 잘 해내었다. 조각미남을 아니어도 그가 팬들을 사로잡을 수 있던 건,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했던 그의 모습과, 담담히 부어내는 그의 연기, 그 깊음을 알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는 불멸의 이순신 안에서 만큼은 400년 전 이순신과 함께 소통하고 숨쉬었다. 회를 거듭할 수록 깊이를 더해가는 그의 연기가 그것을 증명했다. 영웅의 절제된 슬픔과 측량하기 어려운 고뇌까지. 대상을 받을 수밖에 없던 그 자리에 대상을 답기에 자격이 너무도 충만한 그가 있어 다행이다. 김명민, 그가 이제해야할 일은 그가 그동안 보물처럼 쌓아온 연기내공으로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대상에 보답하는 일일 것이다.